파로위(破虜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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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도성 5부(部)에 소속된 방리군(坊里軍) 가운데 북부(北部)에서 소집된 민군(民軍) 조직.

내용

우리나라는 삼국 시기부터 중앙군(中央軍) 이외에 도성(都城)을 지키는 민군(民軍) 으로서 방리군(坊里軍)이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은 도성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소집·편제하여 만든 군대로 그다지 정예병은 아니었다. 중앙군이 제대로 기능할 때에는 이들은 거의 주목받지 않았으나, 중앙군이 부실할 경우 방리군이 도성을 지키는 데 동원되기도 하였다. 특히 고려 말에는 중앙군이 부실하여 방리군이 자주 동원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방리군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세조대에 들어와 방리군의 정비가 논의되었다. 그 후 1469년(예종 1) 국왕은 승정원에 오부(五部) 방리군의 정비를 명(命)하고, 이어 어서(御書)를 내리기를, “중부(中部)는 분용위(奮勇衛)로, 동부(東部)는 효건위(驍健衛)로, 서부(西部)는 무소위(武昭衛)로, 남부(南部)는 충건위(忠建衛)로, 북부(北部)는 파로위(破虜衛)로 칭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파로위는 방리군 가운데 북부에서 소집된 군대임을 알 수 있다.

용례

仍下御書曰 中部稱奮勇衛 東部驍健衛 西部武昭衛 南部忠建衛 北部破虜衛(『예종실록』 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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