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로(投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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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에게 투항하는 행위.

개설

투로는 여진이나 일본 등 오랑캐에게 투항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투항을 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반대로 외국인이 투항하는 경우에는 귀화(歸化), 투화(投化) 또는 향화(向化) 등으로 표현되었다.

내용 및 특징

투로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와 관련된 경우가 기록으로 전한다. 예를 들어 1624년(인조 2) 이괄의 반란 때 반란군에 가담하였던 한명련(韓明璉)의 아들 한윤(韓潤)이 아버지가 살해되자 후금(後金)으로 투항한 경우가 있었다(『인조실록』 3년 9월 1일). 한윤이 후금에 투항할 때 동생인 한란(韓瀾) 역시 투항하였으며, 한란은 투항 후 한의(韓義)로 개명하기도 하였다. 후금에 투항한 한윤과 한의는 모두 장수가 되어 청나라태종이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 때 함께 오기도 하였다. 특히 의주가 함락될 때 한윤 등이 사전에 성내 반란군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도록 하였으며, 이후 명나라금주 공격 시에는 선봉에서 활약하여 청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변천

오랑캐의 진영에 투항한 사람들은, 그쪽 사람들의 요구에 길을 인도하거나(『연산군일기』 11년 3월 23일), 적장(賊將)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본국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광해군일기』 13년 5월 14일). 병자호란 때는 전쟁 초기부터 투항하여 약탈을 자행한 김경(金璟)이 체포되어 참수되기도 하였다(『인조실록』 15년 2월 11일).

반대로 다시 조선으로 도망 와서는 그곳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1626년(인조 4) 평안감사윤훤(尹暄)의 장계에 따르면, 본래 정주(定州)의 수영패(隨營牌)인 김진(金進)이 그가 모시던 김경서(金景瑞)를 따라 투로하였다가 8년 만에 돌아와서는 김경서나 강홍립 등의 정황이나 후금의 정황을 보고하기도 하였다(『인조실록』 4년 6월 25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연암집(燕巖集)』
  • 우경섭, 「17세기 전반 만주로 귀부한 조선인들-八旗滿洲氏族通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48,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