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왕일(土旺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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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끝나갈 무렵에 오행 중 토기가 가장 왕성한 날.

개설

토왕(土旺) 혹은 토왕지절(土旺之節)이라 불린다. 계절의 끝 무렵인 계춘(季春)·계하(季夏)·계추(季秋)·계동(季冬) 즉, 사립(四立)이 들기 전, 18일 동안 연중 총 72일간 든다. 계춘은 음력 3월, 계하는 음력 6월, 계추는 음력 9월, 계동은 음력 12월에 든다. 그중 음력 6월 계하의 토왕이 음양오행(陰陽五行) 중 토(土)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다고 여겨, 토왕일과 관련된 행사가 가장 많다. 계하의 토왕일에는 불을 취하는 나무를 바꿔 불씨를 보급하는 개화(改火)의식이 행해졌으며, 오제(五帝) 중 중앙의 신인 황제(黃帝)와 칠사의(七祀儀)에 의거해 토지신에게 중류제(中霤祭)를 지냈다. 또한 궁중의 내의원에서는 이날 옥추단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

연원 및 변천

토왕일은 토기가 왕성한 날로 특히 계하에는 예조에서 개화령(改火令)을 내리면 개화의식을 진행하였다. 이 의식은 나무를 바꿔 새로 불을 지펴 생성된 불씨를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주나라의 육관(六官) 중의 하나인 하관(夏官) 사훤(司烜)이 불을 피우는 정령(政令)을 맡아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나라의 불씨[國火]를 바꿔 때에 따라 유행하는 전염병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주례』를 상고하여 1406년(태종 6)부터 시행되었다(『태종실록』 6년 3월 24일). 개화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불씨를 오래 두면 양기가 정도에 지나치게 형성되어 역병이 생길 수 있어, 계절마다 각기 다른 나무에 불을 붙여 불씨를 바꾸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화의식은 1년 중 총 5번 행하는데, 여름의 토왕일 외에도 사계절의 입절(入節)인 입춘(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에 행하였다. 이는 중국의 오행에 입각해서 행한 것으로 보인다. 『연원직지(燕轅直指)』에 의하면, 중국의 숭복사(崇福寺) 서남쪽에 위치한 오제묘(五帝廟)에서 연중 제사를 지내는데 그중 토왕일에는 황제(黃帝) 함추뉴(含樞紐)를 중앙에서 제사하고 그 외에 사립(四立)에 각각 동교·남교·서교·북교에서 오제에게 제향(祭饗)했다고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6월의 토왕이 드는 날에 의서를 만들었다는 황제에게 제사하고 궁중의 내의원(內醫院)에서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여름철에 병에 들기 쉬우므로 몸을 보호하도록 배려하기 위해 이 약을 신하들에게 3개씩 하사하였다고 한다. 여기서의 황제가 다섯 방위 중 중앙을 관장하는 오제(五帝) 중의 하나인 함추뉴로 보인다. 옥추단은 추독단(追毒丹)이라고 불리며 단오 때에도 왕이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의 한 가지로서 해독 작용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차 및 내용

개화의식은 한양에서는 병조에서, 그 외의 지역은 수령들이 주관하였다. 각각의 개화의식 때마다 다른 나무를 사용하였는데, 계하의 토왕일에는 토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황색 나무에서 불을 취하였다. 개화의식은 뽕나무와 산뽕나무를 서로 문질러서 불씨가 나오면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토왕일에 불씨를 바꾸어 진상할 때 각 전궁은 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영희전(永禧殿)·영녕전(永寧殿)·경모궁(景慕宮)·육상궁(毓祥宮)·경우궁(景祐宮) 순으로 바꾸었으며, 관아는 의정부(議政府)·내각(內閣)·승정원(承政院)·시강원(侍講院)·익위사(翊衛司)·한성부(漢城府) 순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처럼 개화 후의 불씨는 각 전궁(殿宮)에 진상한 뒤 모든 관아에 나누어 주었다. 한성부는 또 다시 오부(五部)에 나누어 주게 하였고, 다른 지역도 이와 같이 지역의 수령들이 불씨를 여러 고을로 하여금 집집마다 나누어 주게 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불씨는 없애게 하였다. 개화의식을 거쳐 생성된 그 철의 불씨로 바꾸어 음식을 끓이는 데 사용하면 음양의 절기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전염병을 막아 주고 또 우주의 섭리가 조화롭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계하의 토왕일에는 칠사의(七祀儀)에 의거해 중류에 제사지냈다. 칠사의는 봄에 사명(司命)과 호(戶)에, 여름에 조(竈)에, 가을에 문(門)과 여(厲)에, 겨울에 행(行)에, 계하(季夏)의 토왕일에 중류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칠사에게 제사하는 신은 각각 다른 직능을 지닌다. 사명(司命)은 궁중(宮中)의 소신문(小神門)이며, 호는 출입(出入)을 주관한다. 행은 도로의 행작(行作)을 주관하며, 여(厲)는 공려(公厲)를 이르는 것으로 옛날 제후들 중 후손이 없는 이들을 말한다. 조(竈)는 음식(飮食)을 관장하는 신이며, 중류는 당실(堂室)의 거처(居處)를 주관하는 신이다. 중류는 토지신을 말하며, 칠사 중에서도 작은 신에 해당한다.

칠사의 제사는 시향(時享)으로 납향(臘享)과 협향(祫享)에 두루 제사하여 종묘 제향 의식[廟享儀]에 의거하여 진행되는 것과 달리, 중류(中霤)는 계하(季夏)에만 제사하여 의식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중류는 종묘(宗廟)의 뜰에서 제사지내며, 제사 전 여러 제관이 이틀은 정침(正寢)에서, 하루는 묘소에서 치재(致齋)하였다. 그 신위는 묘정(廟庭)에 설치하였는데, 그 위치는 서문 안의 길 남쪽에 동쪽으로 향하게끔 방향을 잡아 그 앞에서 중류제를 지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궁중과 달리 가정에서는 집의 한 가운데에 있는 방에서 토지신을 위한 중류제를 지냈다. 계하의 토왕일에는 내의원에서 왕에게 옥추단을 진상하면, 왕은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옥추단은 토왕일 외 단오에도 나누어 주었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내의원에서 만든 옥추단은 금박에 싸여 있는데, 그곳에 구멍을 뚫어 오색실에 매어 차고 다니다가 급성 위장병이나 더위를 먹었을 경우에 갈아서 물에 타 먹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의하면 이것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재액을 물리친다고 하였던 것으로 보아, 옥추단은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구급약으로 복용하기도 하였지만, 액을 물리치는 부적(符籍)의 기능도 동시에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도잡지(京都雜志)』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연원직지(燕轅直指)』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 『주례(周禮)』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