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어람(太平御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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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때에 이방(李昉)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지은 백과사전식 저술.

개설

『태평어람(太平御覽)』은 중국 송나라 때에 이방(李昉)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지은 백과사전식 저술이다. 고금의 사실을 널리 옛날 책 따위에서 구하고, 1,860종의 서적으로부터 발췌하여, 형법(刑法), 예악(禮樂), 의식(儀式) 따위의 55부문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977~983년에 간행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태평광기』와 『태평어람』의 편찬에는 모두 13명의 학자가 참여했는데, 이방(李昉)이 그 대표자이다. 이방은 송(宋)나라 초기의 학자로 자는 명원(明遠)이고, 심주(深州) 요양(饒陽:지금의 하북성(河北省)에 속함.) 사람이다. 오대(五代) 후한(後漢)의 건우(乾祐)년 간에 진사(進士)가 되었고, 후한과 후주(後周)에서 벼슬했으며, 송대에 들어와, 우복야(右僕射)ㆍ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일찍이 칙명을 받들어, 『태평광기』ㆍ『태평어람(太平御覽)』을 비롯하여, 『문원영화(文苑英華)』, 『구오대사(舊五代史)』의 편찬을 이끌었으며, 자신의 문집 50권이 있다. 그 밖의 참여자는 호몽(扈蒙), 이목(李穆), 서현(徐鉉), 송백(宋白), 장계(張-), 왕극정(王克貞), 조린기(趙隣幾), 오숙(吳淑), 여문중(呂文仲), 탕열(湯悅), 동순(董淳), 진악(陳鄂) 등이다.

『태평어람』의 초기의 명칭은 태평류편(太平類編) 또는 태평편류(太平編類)였으나, 후에 송(宋) 태종(太宗)이 하루에 3권씩 1년 동안 독파했다고 해서 태평어람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동시기에 발간된 태평광기(太平廣記), 문원영화(文苑英華) 및 책부원구(冊府元龜)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로 불리고 있다.

북송 초년 태종(太宗)조광의(趙光義)가 태평흥국(太平兴国) 2년인 977년 이방(李昉) 등에게 편집을 명하여 태평흥국 8년 12월인 984년 완성된 1,000권에 달하는 송대 최대의 유서(類書:분류별 백과사전류) 중의 하나이다. 태평어람의 편집은 천부(天部), 시서부(时序部), 지부(地部), 황왕부(皇王部) 등의 55문(門)으로 나누어 편집되었으며, 각 문(門)은 류(類)로 나뉘고, 아래로 다시 목(目)으로 나뉘어, 유목(類目)의 총수가 약 5,474류(類)가 되며, 인용된 서적은 1,690여 종의 이르고 있으나, 이들 서적은 현재 70~80%가량이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태평어람』은 본래의 인용서적 전부가 송(宋) 초기에 남아 있지 않아, 전 시대에 만들어진 수문전어람(修文殿御覽), 예문류취(藝文類聚), 문사박요(文思博要) 등의 유서에서 따온 것이다

서지 사항

10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1.4cm 가로 16.6cm(1818년 본)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태평어람』의 처음 이름은 『태평총류(太平總類)』이며, 줄여서 『어람(御覽)』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태종(太宗)의 명으로 977년에 착수하여, 983년에 완성시킨,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에 따르면, 이 책이 완성되자, 태종이 하루에 3권씩을 읽어, 1년 만에 독파(讀破)하였으므로, 책명을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내용 체재는 55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인용한 책이 1,690종이나 된다. 전대(前代)의 잡서로부터 대개 채록한 것이나, 많은 일서(逸書)의 이야기를 적어 놓아, 중국의 재래 백과서 중 백미(白眉)이다. 이 책은 송대(宋代) 이전의 고사를 아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사이부(四夷部)에 신라와 고구려 등에 관한 기록이 보여 한국 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자료와 서적들에서 유서(類書), 즉 오늘날의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일은 역대 왕조마다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이뤄졌다. 이전에도 북제의 『수문전어람』, 당나라 때 명관료이자 학자이기도 했던 구양순의 『예문유취』를 비롯하여, 『문사박요』 등의 유서가 있었다. 『태평어람』은 전대의 이 유서들에서 각종 서적들의 기록과 문장을 인용하여, 유서로 엮은 책이었다.

송나라 태종의 첫 연호인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에 편찬한 책으로 총 55부에 부설된 5,474류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항목에는 각종 서적의 기록과 문장을 인용하였다. 본디 태평총류(太平總類), 태평류편(太平類編), 태평편류(太平編類)라고 불렸다.

전대의 서적들 1690여 권(다만 중복은 있다)에서 인용한 내용들을 정리한 책이며, 전대에 유실된 서적이나 문장등이 담겨 있으며, 인용된 서적의 7~8할이 유실되었고, 주로 송대 이전의 고사라든지, 주변국, 특히 고대 한국의 역사, 풍습에 대한 기록들도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태평어람 이후 이런 유서, 즉 중국의 전통적인 백과사전은 이후에도 활발하게 간행되어서, 명나라 영락제의 영락대전(22,877권)이나, 청나라의 강희제가 명령하고, 옹정제 때 완성된 『고금도서집성』(10,000권)이나 이후의 사고전서 등이 발간되는 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중기로 보이는데,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 숙종 5년(1100)에 고려사신 오연총이 구해 처음 들어왔던 것 같다. 이후 『태평광기』 등의 다른 4대서들도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潘銘基, 「『太平御覽』引《史記》條目實見《通典‧兵典》考」, 『Shu Mo Chi Kan』 Vol. 46 No. 3, 台灣學生書局有限公司, 2012.
  • 박대재, 「사승 『후한서』 동이열전에 대한 예비적 고찰」, 『한국고대사연구』 제55집, 한국고대사학회, 2009.
  • 유병갑, 「《보강총백원전》의 검토」, 『중국학논총』 6, 한국중국문화학회, 1997.
  • 최환, 「한국 유서의 종합적 연구(1) -중국 유서의 전입 및 유행-」, 『중국어문학』 41호, 한국중국어문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