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太平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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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에 이방(李昉) 등 12명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설화집.

개설

『태평광기(太平廣記)』는 중국 송(宋)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에 이방(李昉) 등 12명이 왕명을 받아 엮은 설화집으로 500권이다. 앞에 이방의 진표(進表)ㆍ인용 서목 및 목록이 있다. 내용은 한(漢)ㆍ진(晋)ㆍ당(唐)ㆍ오대(五代)에 걸쳐, 1,200여 년 간의 소설가의 이야기들을 모은 것인데, 대부분 진ㆍ당 시대의 전기소설적(傳奇小說的)인 내용이다. 약 2,000편의 설화ㆍ패설(稗說) 등이 수록되어 있어, 시대에 따른 문학사상의 변천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용서목만 해도 344종에 이르고 있어, 원서가 이미 없어진 것도 『태평광기』에 의하여, 원면모의 일부나마 짐작할 수도 있다.

편찬/발간 경위

초각(初刻)은 태평흥국 6년(981) 정월에 인판(印版)되었으나, 정교(政敎)에 긴요한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청루(太清樓)에 저장하여 버렸으므로, 사람들이 접할 기회가 적었다. 그 후 명(明)의 허자창(許自昌)이 교증(校證)한 목판본(木版本) 80책이 가정(嘉靖) 45년(1566)에 간행되었고, 청(清) 황성(黃晟)이 교증한 목판본 66책이 융경(隆慶) 2년(1568)에 간행되었다.

서지 사항

509권 6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17.3cm 가로 11.1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또 규장각에는 송판(宋板: 10책)과 청판(清板)이 보존되어 있다.

구성/내용

90여 부로 분류된 이 책의 찬집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선(神仙)ㆍ여선(女仙)ㆍ도술(道術)ㆍ방사(方士)ㆍ이인(異人)ㆍ이승(異僧)ㆍ석증(釋證)ㆍ보응(報應)ㆍ징웅(黴應)ㆍ정수(定數)ㆍ감응(感應)ㆍ참응(讖應)ㆍ명현(名賢)ㆍ염검(廉儉)ㆍ기의(氣誼)ㆍ지인(知人)ㆍ정찰(精察)ㆍ준변(俊辨)ㆍ유민(幼敏)ㆍ기량(器量)ㆍ공거(貢擧)ㆍ전선(銓選)ㆍ직관(職官)ㆍ권행(權倖)ㆍ장수(將帥)ㆍ효용(驍勇)ㆍ호협(豪俠)ㆍ박물(博物)ㆍ문장(文章)ㆍ유행(儒行)ㆍ악(樂)ㆍ서(書)ㆍ화(畫)ㆍ산술(算術)ㆍ복서(卜筮)ㆍ의(醫)ㆍ상(相)ㆍ기교(技巧)ㆍ박희(博戲)ㆍ기완(器玩)ㆍ주(酒). 식(食)ㆍ교우(交友)ㆍ사치(奢侈)ㆍ궤사(詭詐)ㆍ첨녕(諂佞)ㆍ유오(謬誤)ㆍ편급(偏急)ㆍ회해(詼諧)ㆍ조초ㆍ치비(嗤鄙)ㆍ무뢰(無賴)ㆍ경박(輕薄)ㆍ혹포(酷暴)ㆍ부인(婦人)ㆍ정감(情感)ㆍ동복노비(童僕奴婢)ㆍ몽(夢)ㆍ무염(巫厭)ㆍ환술(幻術)ㆍ요망(妖妄)ㆍ신귀(神鬼)ㆍ담이(談異)ㆍ야차(夜叉)ㆍ신혼(神魂)ㆍ요괴(妖怪)ㆍ정괴(情怪)ㆍ영이(靈異)ㆍ재생(再生)ㆍ오전생(悟前生)ㆍ총묘(塚墓)ㆍ명기(銘記)ㆍ뇌(雷)ㆍ우풍홍산계석수정(雨風虹山溪石水井)ㆍ보(寶)ㆍ초목(草木)ㆍ용(龍)ㆍ호(虎)ㆍ축수(畜獸)ㆍ호(狐)ㆍ사(蛇)ㆍ금조(禽鳥)ㆍ수족(水族)ㆍ곤충(昆蟲)ㆍ만이(蠻洟)ㆍ잡전기(雜傳記)ㆍ잡록(雜錄). 『태평광기』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고려사(高麗史)』 권7 악지(樂志)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늦어도 고려 고종(高宗) 연간(1214~1259) 전부터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보면, 성임(成任)이 『태평광기』를 초록하여,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50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책이 바로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의 저본(底本)이 아닌가 생각된다. 『태평광기언해』에 대하여 어떤 이는 그 생산된 시기를 명종(明宗)ㆍ선조(宣祖) 이후 현종(顯宗)ㆍ숙종(肅宗) 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는 중국 북송(北宋)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에 편찬되어 태평흥국 6년(981년)에 판각되었다. 이 책은 한(漢)나라 시대부터 북송(北宋) 초기에 이르는 소설, 필기, 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하여 총 500권에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했다.

92개의 각 부류에 실려 있는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대부분 인물명을 제목으로 삼았으며, 고사의 끝에는 채록의 출처를 밝혀 놓았다.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운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없어진 것으로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 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하여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 여선(女仙), 보응(報應), 신(神), 귀(鬼), 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신의 부류는 조상신, 사당신, 산천신 등에 관한 내용이고, 귀의 부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귀신(도깨비)' 이야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잡전기(雜傳記)」는 모두 당(唐)나라 시대의 전기(傳奇)를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어떤 종류의 내용이 주로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宋)나라 시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각종의 고소설을 많이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고, 문장, 고증 등의 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방면의 연구와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위진 남북조와 당나라 때의 사회 상황을 연구할 때에도 이 책에서 많은 유용한 자료를 찾아 낼 수 있다.

이 책의 성격을 규명하는 다양한 논의 가운데 하나는 유서(類書)로 간주하는 것이다. 유서는 각종 자료를 찾아보기 쉽게 주제별로 나누어 편집한 책으로서, 오늘날의 백과사전처럼 필요한 자료나 구절을 찾아보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서는 주로 도구적인 책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유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학문체계인 유가 경전이나 역사서, 철학사상서, 작가들의 문집 안에 적절히 포괄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별로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를 모아놓은 도구서로서 유서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 본다면, 유서는 '도구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가지 현상과 사물, 사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과 구조 속에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분류화, 체계화, 개념화한 세계 해석의 방식을 감지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서가 지어졌을 당시의 배경과 목적, 체제 등의 앞뒤 흐름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유서는 중국의 전통 문화구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상규,「『태평광기』 회교본의 문자적 문제 고찰」, 『중국언어연구』 제53집, 한국중국언어학회, 2014.
  • 김일근,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서광문화사, 1990.
  • 김장환, 「중국 고전 번역과 ≪태평광기≫ 번역 일사(佚事)」, 『중국소설논총』 제32집, 한국중국소설학회, 2010.
  • 김현룡, 『한중소설설화비교연구』, 일지사,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