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정(太極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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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조성된 정자.

개설

태극정(太極亭)은 인조대에 창덕궁 후원의 가장 깊은 공간인 옥류천 일원에 조성된 정자이다.

위치 및 용도

태극정은 상림삼정(上林三亭) 중 하나로 소요정(逍遙亭)·청의정(淸漪亭)과 더불어 1636년(인조 14)에 옥류천 일원에 지어졌다. 본래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이었는데, 인조가 다시 짓고 이름을 태극정으로 바꾸었다. 소요정의 북쪽, 청의정의 동쪽에 조성되었으며 태극정의 서쪽에는 작은 못이 있다.

태극은 ‘태초의 혼돈한 원기(元氣)’를 의미한다. 태극정에는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주련에는 정자가 숲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창밖의 운무가 방안 사람의 옷 위에서 피어날 정도로 짙으며, 휘장을 걷어 올리자 사방의 경치가 비로소 거울에 비치는 광경을 묘사하였다. 태극정의 원래 이름이 ‘구름의 그림자’라는 뜻인 것과 주련의 내용으로 볼 때, 태극정에서 바라보는 옥류천 계곡의 운무가 장관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조대에 조성한 이래로 후대 왕들은 태극정에서 옥류천 계류(溪流)를 즐겼다. 숙종과 정조는 각각 「상림삼정기(上林三亭記)」와「태극정시(太極亭詩)」를 지어 옥류천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를 감상하며 자연을 즐겼다. 순조는 신하들과 함께 『심경(心經)』을 강독하며 학업에 정진하기도 하였다(『순조실록』 11년 윤3월 16일).

변천 및 현황

1636년(인조 14)에 옥류천 일원에 지어졌다.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원래는 사방에 문을 달아 방을 만들어 거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둥만 있고 사방이 터진 정자이다.

형태

정면·측면 각 1칸의 정자로 지붕 가운데에 절병통(節甁桶)이 있다. 절병통은 전각이나 정자의 지붕마루 가운데에 세우는 탑 모양의 장식 기와를 말한다. 문을 달아 방을 만들어 거처가 가능하다. 기둥 밖으로 아(亞) 자 모양의 살로 평난간을 둘렀다.

관련사건 및 일화

태극정 앞 개울에는 태극을 새긴 돌확이 있어, 우주 만물의 근원인 태극을 물속에 살짝 숨겨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만물의 근원은 원래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흐르는 여울물 속에 태극이 숨어 있듯이 만물의 근원은 반드시 존재하고 이를 찾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숙종은 개울가에 모여 있는 태극정, 소요정, 청의정의 아름다움을 중국 여산(廬山)과 난정(蘭亭)에 비유하여 「상림삼정기(上林三亭記)」, 즉 ‘상림에 있는 3개의 정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서 숙종은 옛날 왕이 자연을 사랑하여 3개의 정자와 옥류천을 만들었다는 것을 밝혔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동궐도(東闕圖)」「상림삼정기(上林三亭記)」
  • 이광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수류산방, 2007.
  • 최종덕, 『조선의 참 궁궐 창덕궁』, 눌와, 2006.
  • 한영우,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열화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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