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탈불화(脫脫不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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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년부터 1452년까지 재위하였던 몽골의 대칸.

개설

탈탈불화(脫脫不花)란 몽골어 톡토부하(Toγtobuq-a)의 한자 음역이다. 톡토부하는 쿠빌라이의 직계 후손으로 명나라 사료에는 불화왕(不花王) 혹은 보화가한([普化可汗], Buq-a qaγan)으로도 기록되었다.

가계

조부는 하르구착 두우렝(Qarγučaγ dügüreng) 홍타이지이고, 부는 아자이(Ajai) 타이지이다. 처는 오이라트의 토곤(Toγon)의 딸이다.

활동 사항

톡토부하는 1433년경 즉위하여 스스로 타이송([岱總], Taisung) 칸이라 칭하였다. 타이송이란 태종(太宗)을 뜻한다. 오이라트의 토곤이 톡토부하를 대칸에 옹립하였다. 이후 토곤과 연합하여 당시 동몽골의 실권자였던 아룩타이([阿魯台], Aruγtai)를 공격하고, 1438년에는 아다이([阿台], Adai) 칸을 습격하여 죽였다. 또한 톡토부하는 여진(女眞)의 여러 부족을 항복시키고 삼위우량하이를 제압하였다. 토곤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에센([也先], Esen)이 태사가 되어 톡토부하와 함께 명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1451년 에센이 자기 누이에게 태어난 아들을 톡토부하의 태자로 삼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마침내 에센이 톡토부하를 공격하였는데, 톡토부하의 동생인 악바르진(Aγbarjin)이 배신한 바람에 톡토부하가 패배하여 도망가는 도중에 장인이었던 고를라스(Gorlos) 부의 쳅덴(Čebden)에게 살해되었다. 그가 죽은 후 아들 마하구르기스(Maqagürgis)와 몰론(Molon)이 차례로 즉위하였다.

명나라 사료에는 톡토부하가 오이라트 태사들의 허수아비 왕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톡토부하는 몽골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활발한 외교정책을 실시해 나갔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톡토부하가 조선세종에게 칙서를 보내 회유정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꾸준히 명나라를 사대하였기 때문에 몽골과 가까워지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평안도도체찰사가 변방의 상황을 전하며 에센과 톡토부하의 동태를 전하며 대비책을 논한 기록이 있다(『문종실록』 1년 1월 4일).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Шар тууж (『대황사(大黃史)』)
  • Эрдэнэ тунамал нэртшастир (『에르데니 투누말이라는 역사』)
  • Д. Гонгор, Халх товчоон, ШУА-ийн хэвлэх үйлдвэр, 1970. (D. 공고르, 『할하의 약사』, 과학아카데미 출판사, 1970.)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 Саган сэцэн, Эрдэнийн товч, 1961. (사강 세첸, 『몽골원류(蒙古源流)』,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