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량(打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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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에 등급을 산정하고 그에 따른 기준척으로 측량하여 양안에 기록하는 일.

개설

타량은 토지를 측량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경국대전주해』에 따르면 ‘타(打)’ 자는 조어(助語)라고 쓰고 있어서 결국 토지조사를 뜻하는 양전과 같은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용례 상에서는 양전과 같은 말로 쓰이기도 하고, 혹은 양전의 전체 업무 중 토지의 측량을 지칭하는 용어만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양전은 원칙적으로 20년마다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3등급 내지는 6등급으로 판정한 이후, 각 등급에 해당하는 기준척으로 면적을 측정하여 토지대장인 양안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전이 20년마다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막대한 비용과 행정력이 투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측정이 아니라 이전의 양안을 토대로 넓이만 환산하여 다시 양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토지측량 방식은 세종대 공법 도입을 전후하여 크게 바뀌었다. 조선초기에는 토지를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었는데, 각 등급별로 길이가 다른 기준척으로 측량 업무를 행하였다. 세종 공법 도입 당시 이러한 3등전을 보다 세밀히 하여 6등급으로 토지 등급을 세분화하였고, 또 각 등급 토지 1결의 절대 면적을 넓히도록 하였다. 6등전 분류 하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등급별 기준척을 달리하였다. 이때 6등전 토지의 1결 면적은 1등전 토지의 4배였다.

토지측량 업무는 중앙에서 파견된 양전경차관이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산사(算士) 등을 대동하여 시행하였다. 지방의 수령과 아전 등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많은 민폐가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경차관의 수가 많아 이들을 수행하는 일이 각 지역에 부담이 되기도 하였고(『중종실록』 37년 7월 19일), 때로 궁방 등 권력 기관에서 타량할 때에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였다(『현종실록』 3년 8월 1일).

변천

토지측량 방식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전기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기준척을 달리하여 측정하던 방식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효종대의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에 따르면 기존 6등급에 각각의 자를 모두 사용하는 방식 대신, 1등급 자를 사용하여 면적을 구한 다음 각 등급에 맞게 환산하여 면적을 산출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 방식은 영조대 편찬된 『속대전』에서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 『속대전(續大典)』
  •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