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장(寢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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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이나 혼례 장소에 두르는 휘장.

내용

침장(寢帳)은 대개 비단 천에 ‘수(壽)’ 자를 새겨 넣은 뒤 침실에 걸어 두어 장수를 기원하는 물품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들어와 혼례 장소에도 사용되면서 사치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유로 1715년(숙종 41) 사헌부에서, “요즈음 여항(閭巷)에 사치의 풍조가 극도에 달하여 혼례에 반드시 침장을 사용하는데, 어떤 사람은 금수(錦繡)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슴 가죽을 폐백(幣帛)으로 사용하던 고례(古禮)는 이제 회복할 수 없으나 현훈(玄纁) 2단(段)은 나라의 풍속이 누구나 똑같습니다. 오직 저 여항의 부유한 자들은 은금(銀金)·주패(珠貝)·사릉(紗綾) 등을 반드시 함(函)에 가득 채운 뒤에야 그만두는데, 비록 이에 밑도는 자라 할지라도 본받아 주면(紬綿)으로 많음을 자랑하니, 가난한 자들은 이것을 마련할 힘이 없어서 대륜(大倫)의 시기를 놓치게 되어 더러 죽을 때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청컨대 이제부터는 혼례에 쓰는 침장과 보내는 폐백은 두 가지를 넘는 자는 금조(禁條)를 첨부해 기록하여 일체 금단케 하소서.”라고 논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숙종실록』 41년 9월 6일).

용례

戊戌 憲府論 近來閭巷 奢侈窮極 婚禮必用寢帳 或以錦繡 且儷皮古禮 今不可復 而玄纁二段 國俗同然 惟彼閭漢富者 則銀金珠貝紗綾之屬 必盈凾而後已 雖下於此者 亦以紬綿 效嚬誇多 貧者無力辨此 大倫失時 或有終身不得娶者 請自今婚禮用帳齎幣過數二者 添錄禁條 一切禁斷(『숙종실록』 41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