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덕정(七德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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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세조 등 왕이 거둥하여 군대의 열병을 보던 정자.

개설

칠덕정(七德亭)은 조선시대에 왕이 한강변 일대에 거둥하여 군대의 열병을 보던 정자이다. 선행연구에서는 서빙고 인근 모래사장에 있어서 ‘백사정’이라 부른 정자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칠덕정은 세조대부터 영조대까지, 백사정은 세종대에서 광해군대까지 등장하며, 세조대에는 칠덕정과 백사정이 함께 나오는 데다 다른 이용 행태를 보여 각기 다른 정자로 보인다.

위치 및 용도

오늘날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한강변에 있었다. 한강변의 너른 터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왕들이 군대의 열병을 보던 장소로 활용했다.

변천 및 현황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1464년(세조 10)에 세조는 칠덕정에 중궁과 함께 거둥하여 삼상(三廂)으로 강가에 진(陣)을 치고 삼갑전(三甲戰)을 만들게 하여 이를 구경했다(『세조실록』 10년 8월 20일). 예종은 군인들의 열병을 구경한 후 승리한 부원에게 계교하여 내구마(內廐馬) 1필씩을 하사하였고(『예종실록』 1년 2월 15일), 친열(親閱)할 때 군장을 한 가지라도 빠트린 자에게는 벌을 주었다(『예종실록』 1년 8월 25일). 연산군도 군대 사열을 열무하는 장소로 활용했다(『연산군일기』 5년 3월 9일). 중종대에는 칠덕정에 이르는 길이 험하므로 길을 닦을 것을 신하들이 건의하였다(『중종실록』 29년 윤2월 14일). 조선시대에 왕이 칠덕정에서 군대를 친열한 기록은 영조대까지 등장한다(『영조실록』 18년 8월 16일). 1563년(명종 18)에는 군대의 관무재(觀武才)를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화포(火砲)를 쏘기도 했다(『명종실록』 18년 9월 16일).

관련사건 및 일화

칠덕정은 조선시대에 왕들이 군대를 사열하는 장소로 주로 활용했는데, 1520년(중종 15) 11월에는 날씨가 추워 칠덕정으로 가는 도로가 좋지 않아 모화관(慕華館)에서 군대 열무를 대신하였다(『중종실록』 15년 11월 14일). 이로써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모화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한 달에 두 번의 친열은 과하며, 백성이 힘들어하므로 봄에는 문과와 무과의 회시(會試)가 인접하여 있으니 가을로 미루자는 신하들의 의견이 있었다(『중종실록』 29년 윤2월 16일). 중종은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자주 칠덕정에서의 군대 사열을 행했는데, 이때 신하들에게 오언율시(五言律詩)를 짓게 하기도 했다(『중종실록』 29년 9월 25일).

참고문헌

  •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누정』,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 임의제, 「조선시대 서울 누정의 조영특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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