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집전(春秋集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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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말기의 학자 이진상(李震相)이 『춘추(春秋)』에 관한 여러 설을 모아 정리한 경전주석서다.

개설

이 책은 이진상이 『춘추』에 관한 여러 설들을 모아 정리한 것을 1912년에 그의 아들 이승희(李承熙)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저자의 서문과 범례, 인용선유성씨(引用先儒姓氏), 춘추 강령, 춘추 독법, 정자춘추전서, 호씨춘추전서가 있고, 권말에 곽종석(郭鍾錫)의 발문과 춘추단론(春秋斷論)·고오(考誤)가 수록되어 있다.

편지/발간 경위

이 책은 조선 말 유학자·성리학자인 이진상이 저술한 경전주석서다. 저자는 1866년(고종 3) 국가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한 『묘충록(畝忠錄)』을 저술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대해 반대운동을 벌였다. 또 운요호사건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주리론을 중심사상으로 이일원론(理一元論)을 주장하였다.

『춘추』는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이다. 경문(經文)이 1,800여 조(條), 1만 6,500자(字)로 이루어진 최초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로서, 춘추 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으로부터 애공(哀公)에 이르기까지 12공(公) 242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본래는 단행본이었지만, 지금은 주석서인 춘추삼전(春秋三傳: 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좌씨전(左氏傳))의 부속 형태로 전하고 있다.

‘춘추’라는 말은 시간의 추이(推移)를 상징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약어로서, ‘일년간(一年間)’이라는 뜻인데, 본래는 주 왕조(周王朝) 치하 각 제후국의 독자적인 편년사를 가리키는 통칭이었으며, 『오월춘추(吳越春秋)』·『여씨춘추(呂氏春秋)』·『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등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춘추』는 본래 노나라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궁정연대기(宮廷年代記)였는데, 여기에 공자(孔子)가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필삭(筆削)을 가함으로써 단순한 궁정 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유가의 문헌 가운데 『춘추』에 관한 언급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맹자(孟子)』 ‘등문공하(滕文公下)·이루하(離婁下)’로서, 군부(君父)를 시해하는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배출되는 혼란기에 공자가 명분을 바로잡고 인륜을 밝혀 세태를 바로잡고자 『춘추』를 지었다고 하는 제작 동기가 서술되어 있다.

『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며, 『춘추』의 경문 속에서는 사건이나 인물이 공자의 예(禮)와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 이념 아래 비판 또는 평가되고 있다. 『춘추』는 사건에 의탁하여 대의명분을 피력한 책이며, 공자의 독특한 필법이 경문 전체에 일관하고 있다.

서지 사항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활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곽은 22.5×16.4cm이다. 10행 22자의 유계, 주쌍행, 상하내향1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1.4×21.8cm이며,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1912년 이진상의 아들 이승희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저자의 서문과 범례, 인용선유성씨, 춘추 강령, 춘추 독법, 정자춘추전서, 호씨춘추전서가 있고, 권말에 곽종석의 발문과 춘추단론·고오가 수록되어 있다.

권1에 노은공(魯隱公), 권2에 환공(桓公), 권3에 장공(莊公), 권4에 민공(閔公), 권5∼7에 희공(僖公), 권8에 문공(文公), 권9·10에 선공(宣公), 권11에 성공(成公), 권12∼14에 양공(襄公), 권15∼18에 소공(昭公), 권19에 정공(定公), 권20에 애공(哀公)이 수록되어 있다.

서술 방식은 원문을 먼저 기재하고 다음에 한 자 낮추어 주석을 달았으며, 제목 위에는 『통감강목(通鑑綱目)』의 예를 적용, 분주(分註)하고, 『춘추』의 원본에 의거해 처리하되, 내용상의 차이는 주로 호씨(胡氏)의 설을 따랐는데, 다만 공양(公羊)의 해석이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을 따랐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조항에서는 선유의 말을 광범하게 수집, 보충하였는데, 인용한 선유가 98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원년춘왕정월(元年春王正月)’에서는 ‘원’은 시초의 뜻으로 즉위한 첫해를 원년이라 하는데, 노은공 원년은 주나라 평왕 49년이다.

『춘추』는 노나라의 역사기 때문에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주의 예에 따라 자(子)월로 해의 첫 달을 삼아 정월· 2월· 3월이 봄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어 왕정월은 그 때 왕이 정월로 치는 달이었기 때문에 열국이 그 예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오년춘공관어당(五年春公觀魚棠)』에서는 『좌씨전』에는 ‘관(觀)’자가 ‘시(矢)’자로 되어 있으나, 『공양전』·『곡량전』·『호씨전』에 모두 ‘관’자로 되어 있으므로, ‘관’자로 고친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기존에 나와 있던 『춘추』에 관한 자료와 주석을 모아 놓아, 유학을 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 금장태, 『퇴계학파와 리철학의 전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김동민, 「조선조 간행본 『춘추(春秋)』 주해서(註解書)의 특징-규장각 소장 『춘추』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제73호,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2016.
  • 송찬식, 「한주전서해제(寒洲全書解題)」, 『한주전서(寒洲全書)』 1, 아세아문화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