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학의(初學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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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학업에만 전념하는 의녀 교육생.

개설

1478년(성종 9)에 예조에서 의녀권과조(醫女勸課條)에 대해 아뢴 내용에 의하면, “의녀를 3등으로 나누되, 첫째는 내의(內醫)라 하여 2인을 두고 달마다 급료를 주며, 둘째는 간병의(看病醫)라 하여 20인을 두고 전달에 강(講)한 점수[畫]가 많은 자 4인에게 급료를 주며, 셋째는 초학의(初學醫)라 한다. 초학의는 간병(看病)에 배정하지 말고, 학업에 전념하게 한다.”고 하여 의녀의 등급을 3단계로 구분하였다(『성종실록』 9년 2월 16일). 초학의는 그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의녀로 학업에만 전념하는 의녀 교육 과정생을 말한다.

의녀 교육 대상자는 원래 관아의 어린 여자 종들이었기 때문에 학문적인 기초가 부족하였다. 총명한 어린 여종이 지방에서 뽑혀 서울로 올라오면 초학의가 되어 3년 정도 기초적인 공부를 하였다. 이 3년 동안 『천자문』, 『효경』, 『정속편』을 비롯하여 사서 등을 읽고 익혔다. 이 기간에는 아직 의녀라 할 수 없으며, 책으로 글을 깨치고 윤리 도덕을 파악하였다. 의녀가 읽는 서책으로는 『인재직지맥(仁齋直指脈)』·『동인침혈침구경(銅人鍼穴鍼灸經)』·『가감십삼방(加減十三方)』·『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부인문산서(婦人門産書)』 등이 있는데, 초학의도 이러한 의학 서적과 산서(算書)를 배웠다. 특히 초학의 때는 기초 과목을 배우는데 제조로부터 매달 상순에는 주로 산부인과의 방서(方書)를, 중순에는 직지맥·찬도맥(纂圖脈) 같은 진맥법과 가감십삼방·화제방 같은 약의 제조법을, 하순에는 동인경(銅人經) 등의 침구법을 교육받았다.

담당 직무

초학의는 실제로 환자를 돌보는 일보다 의녀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해야 했다.

변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의 단행으로 조선의 보건의료 제도를 개혁하였다. 새로운 의학 교육을 시작한 이후 간호부 양성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의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초학의도 없어졌다.

참고문헌

  • 한희숙, 『팔방미인 조선 여의사 의녀』,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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