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역(草原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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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정평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초원역(草原驛)은 정평도호부(定平都護府) 남쪽 35리(약 13.7㎞)에 위치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15세기 후반경에 신설된 역(驛)으로 판단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실려 있지 않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속대전(續大典)』 단계에서부터 고산도(高山道)의 소속 역으로 편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및 변천

초원역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 즈음에 신설된 것으로 보인다. 1485년경 편찬이 완료된 『경국대전』에 초원역이 수록되지 않았지만, 1530년경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초원역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 추정 근거를 삼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초원역은 1530년(중종 25)의 기사에 초원참(草原站)이라는 명칭으로 최초 확인된다(『중종실록』 25년 3월 23일).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해안가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었다. 『대전회통』에 따르면, 초원역은 고산도 소속의 역이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초원역은 고산도찰방이 집무하는 역이며, 초원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6마리, 하등마(下等馬) 20마리, 역리(驛吏) 843명, 참리(站吏) 1,172명, 역노(驛奴) 289명, 역비(驛婢) 208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원래 고산도찰방은 고산역(高山驛)에서 집무를 보았으나, 이후 어느 시기에 초원역으로 집무 역을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초원역은 남쪽으로는 영흥 방면, 북쪽으로는 정평·함흥 방면과 연결되는 한양~경흥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초원역에서는 북쪽으로 정평 봉대역(蓬臺驛), 남쪽으로 영흥 화원역(和原驛) 등과 연결되었으며, 정평 주천역(酒泉驛)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였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초원역도 폐지되었다.

초원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함경남도 정평군 초원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호구총수(戶口總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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