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현(淸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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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청하현(淸河縣)은 삼국시대의 아혜현(阿兮縣)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 경덕왕 때 해아현(海阿縣)으로 개칭되어 유린군(有隣郡: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원)의 영현(領縣)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청하현이라 하고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 경주(慶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에 감무(監務)가 처음으로 파견되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청하군(淸河郡)이 되었으나, 1914년에 청하군이 폐지되고 그 영역은 영일군(迎日郡)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청하현은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하현은 고구려 아혜현에서 기원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일찍부터 신라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경덕왕 때 해아현으로 개칭하였으며, 신라 9주(九州) 중 삭주(朔州)에 소속된 유린군의 영현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청하현이라 개명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청하현에는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에 감무가 최초로 파견되었다. 1413년에 전국 각 고을의 감무를 현감으로 개명하면서(『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청하감무 역시 청하현감으로 변경되었다.

조직 및 역할

청하현은 신라시대에는 유린군의 영현인 해아현으로 편성되었다. 해아현에는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 청하현은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청하현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청하현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청하현에는 1392년부터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고, 1413년에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청하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33명, 지인(知印) 19명, 사령(使令) 14명, 관노(官奴) 12명, 관비(官婢) 11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1413년에 청하감무가 청하현감으로 개칭된 이후 조선시대 내내 청하와 관련된 특별한 연혁의 변동 내용은 거의 없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청하군으로 변동되어 안동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청하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청하군은 폐지되고 그 영역은 영일군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청하현의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덕성리에 위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