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天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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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 삼학(三學)의 하나로 천문(天文), 역수(曆數), 점산(占算), 측후(測候), 각루(刻漏)의 일을 연구하는 학문 혹은 그 담당직의 이름.

개설

천문학(天文學)은 고대에 천문과 역산을 관측하여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관직 제도상 천문학은 관상감의 삼학 중 하나를 말한다. 하늘의 대리자로 간주된 고대 군왕은 하늘의 뜻을 직접 잇는다는 논리로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천문학을 중시하였다. 고려는 서운관, 조선은 관상감에서 천문학의 교육과 양성을 담당하였다. 치력(治曆)과 측후 및 교식(交食)의 일을 주된 임무로 삼았다. 조선후기 관상감 직제에서 역서(曆書)를 편찬하는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이 담당하였고, 교식 추보의 일은 수술관(修述官)이 맡았다.

내용 및 특징

천문의 관측과 역법의 추산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 천문학은 관련 직제를 보면 그 성격이 잘 드러난다. 고려시대는 건국 초부터 주로 천문과 측후의 일은 태복감(太卜監)에서, 역법과 누각의 일은 태사국(太史局)에서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 분과의 관리직으로 판사·정(正)·부정(副正)·승(丞)·주부(主簿)가 있고, 전문직[實官]으로 장루(掌漏) 4명, 시일(視日) 4명, 사력(司曆) 4명, 감후(監候) 4명, 사신(司辰) 4명을 두었다. 세종대에는 1425년(세종 7)에는 금루(禁漏)의 일을 천문에서 분리하였다가 1433년(세종 15)에는 합치기도 했는데, 세조대에 관상감으로 개칭한 뒤로는 주로 분리되었다. 이 때문에 금루관(禁漏官)은 천문학과 병칭되는 면이 많은데, 1750년(영조 26)에 한산(閑散)교수 4자리를 폐지하고서 천문학·지리학·명과학·금루관에 각 1자리씩 분속한 것이 그 예이다.

관상감 산하 천문학 분과의 주요 업무는 『서운관지』 권2에 따르면, 치력과 측후 및 교식이다. 치력은 천문 관측을 통해 정밀한 역법 계산[曆算]과 이를 역서로 편찬하는 일을 담당하며, 조선전기에는 수시력으로, 후기에는 시헌력으로 제작하였다. 측후는 혜성, 패성, 치우기 등 각종 성변(星變)과 재변(災變)의 관측과 해석을 담당하였다. 교식은 고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천변으로 인식하였던 일식과 월식의 추보를 이르고, 조선후기에는 『역상고성후편』 등에 의거한 일월식 계산을 수행하였다.

변천

천문학 분과에서 공부하는 내용은 삼학의 취재 과목에서 잘 보인다. 『경국대전』에는 『보천가』의 암송 또는 도해, 『대명력(大明曆)』의 일월식과 태일법, 『칠정산내편』의 일월식, 오행성, 태양, 역일, 교식추보가령, 보중성(步中星), 태음, 『칠정산외편』의 일월식 계산을 본다고 하였다. 이후 조선후기에는 12월 시험인 춘하등(春夏等) 취재에는 『천문류초(天文類抄)』의 암송, 『천문』과 『의상(儀象)』을 펴놓고 읽는 시험인 임문(臨文), 시헌법의 칠정과 교식가령의 계산을 시험하였고, 6월 시험인 추동등(秋冬等) 취재에는 『보천가』의 도해, 『역법』·『구루(晷漏)』·『역인(曆引)』을 펴놓고 읽는 시험인 임문, 시헌법 칠정 계산을 시험하였다. 1791년(정조 15) 신해절목에는 시헌력 계산을 위해 1723년에 청나라에서 간행된 수학 관련의 『수리정온(數理精蘊)』과 1742년에 대진현(戴進賢)이 간행한 역법 관련의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篇)』을 쓰도록 하였다(『정조실록』 15년 10월 27일).

1741년(영조 17)에는 천문학 관원 중 핵심 인력으로 30명 정원의 삼력관을 두었는데, 이듬해에 5명을 증원했다가 1798년(정조 22)에 다시 5명을 감원하였다. 이들은 성력(星曆)을 추보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곧 조선후기 역서인 『시헌서』를 편찬하는 일에 정원 중 매년 25명을 선발하여 수행케 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명과학의 경우는 핵심 인력으로 7명의 추길관(諏吉官)을 두었으며, 이들이 길일과 길시의 택일·택방 임무를 맡았다.

1742년(영조 18)에는 수술관 6명을 두어 교식 추보의 일을 맡겼으며, 추보관(推步官) 10명은 보조로 쓰던 칠정산내편법(대통력법)의 추보를 담당하였다. 1791년(정조 15)에는 추보관을 폐지하고 수술관이 아울러 내편법에 의거한 역산을 담당케 했다. 또 40세 미만의 첨정(僉正) 이하 관원 중에 선발하여 각 술업을 연마케 하는 인력을 총민(聰敏)이라 하였는데, 삼학의 총민 14명 중 천문학에 10명을 배정하였다. 또 각 부서에 처음 입속하는 생도 60명 중 천문학에는 40명을 두었다.

천문학 훈장(訓長)은 삼력관들을 봄가을로 과강(課講)하고 취재 시험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로 1인을 두었다. 삼력관과 수술관 중에서 역리(曆理)에 밝은 자는 부훈(副訓)으로 삼았으며, 당상관 중 가장 품계가 높은 자를 천문학 수당(首堂)으로 임명하여 훈장의 임무를 맡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국역고려사 권14 지2 曆志 역주』, 동아대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上·中·下 , 上海人民出版社,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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