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시관(參試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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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시험관.

개설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시관(試官)은 상시관(上試官)과 참시관으로 구분되었다. 참시관이 배치되는 과거는 문과초시와 복시, 생원진사시 초시와 복시였다. 문과에서 전시와 알성시, 중시 등 왕이 직접 참석하는 친림시(親臨試)에서는 참시관을 대독관(對讀官)이라 하였다.

참시관은 문과와 생원진사시 모두 초시는 이조, 복시는 예조에서 후보자를 3배수로 추천하여 왕의 낙점을 받아 임명하였다. 전시는 승정원에서 추천을 담당하였다.

문과초시 참시관은 한성시에는 정3품 이하 3명을 각 소마다 임명하였고, 향시에는 정3품 이상 2명을 각 소마다 임명하였다. 문과복시의 참시관은 정3품 이하 4명을 임명하였다. 생원진사시 초시인 한성시에는 정3품 이상 2명을 각 소마다 두었고, 향시는 매 소마다 관찰사가 해당 도의 문과 출신 수령이나 교수 중에서 2명을 임명하였다. 복시 참시관은 정3품 이하 3명을 각 소마다 임명하였다.

1844년부터 문과정시의 초시를 각 도 감영에서도 실시하게 하였는데 도내 문관 수령 중에서 참시관을 맡게 하였다. 혹 문관 수령이 없으면 음관 수령이 맡게 하였다(『헌종실록』 10년 12월 11일).

무과는 전시의 경우 시관을 참시관·참고관(參考官)으로 구분하였다. 왕의 친림 아래 2품 이상의 문관 1명과 무관 2명이 참시관이 되어 시험을 주관하였다. 무과 시관은 병조와 승정원에서 추천하였다.

담당 직무

참시관은 시험문제의 출제와 답안 채점에서 상시관을 보좌하였다. 시제를 의논해서 결정하는 자리에 함께하고(『세조실록』14년 3월 28일), 채점에서 초고 과정을 담당하였다.

시권을 채점하여 등급을 정하는데 이를 과차라 하였다. 과차는 초고(初考)·재고(再考)·합고(合考)의 단계를 거쳤다. 초고에서 참시관들은 시권을 나누어 채점을 하였다. 이를 분고(分考)라 하였다. 채점을 하여 입격 시권을 가려내어 상시관에게 넘겨주었다. 상시관의 재고를 거친 후 합고에서 참시관과 상시관이 함께 모여 초고와 재고의 과차를 비교해 보고 또다시 과차하여 합격자를 결정하였다.

변천

시험 종류별 시관의 품계와 인원에 대한 규정은 『속대전』에서 볼 수 있었다.

참고문헌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1994.
  • 김동석, 「조선시대 시권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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