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관(參考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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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품 이하로 구성된 과거의 시험관.

개설

조선시대 과거는 왕이 인재를 직접 뽑는 전시(殿試) 제도가 확립된 것이 특징이다. 전시의 시관을 참시관(參試官), 참고관(參考官)이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참고관은 참시관을 도와 시험을 관장하면서 각종 시험의 부정이나 문제점을 살피는 역할을 맡았다.

변천

참고관은 1416년(태종 16)에 무과의 시관을 언급한 데서 처음 살펴볼 수 있다. 무과에 왕이 친시(親試)하는 일을 전시례(殿試例)에 의하여 무선사(武選司)가 주관하고, 참고관과 동참고관(同參考官)은 병조의 당상관·훈련관 제조로 삼는다고 하였다(『태종실록』 16년 8월 2일). 이처럼 참고관은 처음에는 무과 친시와 전시의 시관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시관제가 정비되면서 무과의 회시와 전시를 담당하는 참시관과 참고관의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때 전시의 시관은 2품 이상으로 임명된 참시관과 3품 이하 6품 이상으로 임명된 참고관으로 이루어졌다. 참시관은 보통 세 명으로 구성된 반면에 참고관은 네 명에서 많게는 여덟 명까지 구성되었다. 이들 시관의 추천은 시험 종류에 따라 병조 또는 승정원에서 담당하였다. 참고관은 무과 외에도 문과의 회시는 물론 생원진사시, 유생전강(儒生殿講), 공도회(公都會) 등 각종 시험의 시관을 맡았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임선빈·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전시의 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