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독(贊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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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손강서원 소속의 종6품 관직.

개설

조선시대 세손의 교육과 관련하여 찬독(贊讀)은 세종 때 처음 등장하였다. 1448년(세종 30) 세종은 당시의 단종을 세손에 책봉하기 전에 미리 강서원을 설치하고 여기에 종4품의 좌·우익선(左·右翊善) 각 1명과 종6품의 좌우찬독(左·右贊讀) 각 1명을 배치하여 세손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당시의 좌·우익선과 좌·우찬독은 집현전 관원이 겸임하였는데, 좌찬독에 유성원(柳誠源), 우찬독에 이극감(李克堪)이 임명되었다. 1448년 3월 21일 설치된 강서원은 2년 4개월 만인 1450년 7월 20일에 단종이 세손에서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폐지되었지만, 이후의 세손강서원은 이때의 세손강서원을 모범으로 하였다. 따라서 세손강서원이 설치될 때마다 으레 좌·우익선과 좌·우찬독이 배치되었다. 다만 세조 때 집현전이 폐지되고 성종 때 홍문관이 설치됨으로써 성종 이후로는 좌·우찬독을 홍문관 관원이 겸하게 되었다.

담당 직무

찬독은 ‘독서를 돕는다.’ 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의 세자는 장차 왕이 될 신분이므로 세자의 제왕학 교육 목표 역시 세자 개인의 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선까지도 개발·육성하는 데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찬독으로 하여금 세손의 학문과 품성 연마에 필요한 독서를 돕게 함으로써, 어린 세손의 선에 대한 학문적 기초와 실천적 토대를 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변천

이후 영조 때 세손강서원을 강화하면서 좌찬독을 전임직으로 하였다. 이 같은 세손강서원의 직제가 『대전통편』에 실렸는데, 『대전통편』에서 좌찬독과 우찬독의 품계는 이전의 품계 그대로 종6품이었고 좌찬독은 전임직, 우찬독은 겸임직이었다.

갑오개혁 때 세손시강원과 보양청은 모두 시강원에 통합되었다. 따라서 갑오개혁 때 권독은 공식적으로는 세자시강원에 소속된 관원이었다. 이때 정원이 1명으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선포된 후 1903년(광무 7)에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이 설치됨으로써 강서원은 시강원에서 독립하였다. 이는 황제 체제에 맞추어 조선시대의 세손시강원을 격상시켜 독립시킨 것이었다. 황태손강서원에는 일강관(日講官) 2명, 유덕(諭德)과 부유덕(副諭德) 각 1명, 찬독 2명이 배속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황태손강서원이 폐지됨으로써 찬독 역시 없어졌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강학청일기(講學廳日記)』
  • 『강서원일록(講書院日錄)』
  • 『열성진강책목록(列聖進講冊目錄)』
  • 『정조강서원일기(正祖講書院日記)』
  • 『시강원지(侍講院志)』
  • 『열성조계강책자차제(列聖朝繼講冊子次第)』
  • 『서도(강학일기)(書徒(講學日記))』
  • 강태훈, 『경연과 제왕교육』, 재동문화사, 1993.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 민속원, 2008.
  • 이기순, 「인조조의 ‘반정공신’ 세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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