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광무과복시(增廣武科覆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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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무과 시험인 증광무과의 두 번째 단계 시험.

개설

조선시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경우 이를 기념하여 정기 시험인 식년시(式年試)와 별도로 증광시(增廣試)를 실시하였다. 증광시에는 문과와 무과가 함께 치러졌고,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 3단계의 기본적인 시험 절차나 과목 및 선발 인원 등은 식년시와 동일하였다. 다만 경사가 겹칠 경우에는 대증광이라 하여 선발 인원을 초시 및 복시에서 식년시의 2배를 선발하였다. 조선전기 6과목이었던 증광무과 복시의 과목이 조선후기에는 조총(鳥銃) 등 일부 과목이 추가되고 격구(擊毬)가 없어지는 등 변화가 나타났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에 왕의 즉위, 왕과 세자의 가례(嘉禮), 원자의 탄생, 역적 토벌 등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이를 기념하여 정기 시험인 식년시와 별도의 과거인 증광시를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조선중기인 1633년(인조 11) 4월에 인조의 부친인 정원군(定遠君)을 왕으로 추숭(追崇)하는 것을 기념하여 증광시를 시행하기도 하였다(『인조실록』 11년 4월 20일). 아울러 대외적인 위기가 나타나 널리 무사를 선발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는 증광무과를 통하여 다수의 무사를 뽑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1618년(광해군 10) 북방 후금(後金)의 위협이 커짐에 따라 증광무과를 시행하여 방수하는 군대를 증강시키고자 하였다(『광해군일기』 10년 4월 8일).

경사가 여럿 겹칠 때에는 대증광시(大增廣試)를 치렀는데, 선발 인원을 초시와 복시 모두 식년시의 2배로 하였다. 증광시에도 문무과가 있었고, 그 시행 방법과 절차도 식년시와 동일하게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이루어졌다.

내용

증광무과 복시는 기본적으로 식년무과 복시와 절차 및 선발 인원 등이 동일하였다. 복시는 일명 회시(會試)라고도 하는데, 증광무과의 세 단계 중 두 번째로서 초시 합격자를 한성에서 모아 실시하였다. 초시인 훈련원시(訓練院試)와 향시(鄕試)의 합격자 190명을 한성의 두 곳 시장(試場)에 모아 시험을 치렀다. 1소(所)는 훈련원에, 2소는 모화관(慕華館)에 두었고 각각 14명씩 선발하였다.

복시에서는 병조가 훈련원의 7품 이하의 관원과 함께 초시 입격자의 응시 자격을 다시 심사하여 녹명(錄名)한 후 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다. 각 시험장마다 시관은 2품 이상의 문관 1명과 당하관인 문관 1명, 무관 2명으로 4명을 두었다. 시험을 감독하는 감시관(監試官)도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인 1명씩을 두었다. 그리고 시험을 진행하는 실무 관원인 차비관(差備官) 15명과 화살을 거두는 군사인 습전군사(拾箭軍士) 30명씩을 두었다. 시험이 결정되면 각 소에는 과장을 설치하는 날부터 참시관 1명씩 돌아가며 숙직하고 문서를 검사하되 입문관(入門官)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시험 과목은 식년무과복시와 같이 무예와 강서로 이루어졌다. 무예는 『경국대전』에 의하면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창(騎槍)·격구·기사(騎射) 6종이었다. 무예를 시험한 후에는 강서를 시험하였는데 강서 과목으로는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한 책,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한 책, 『통감(通鑑)』·『병요(兵要)』·『장감박의(將鑑博議)』·『무경소학(武經小學)』 중 한 책을 모두 스스로 원하는 바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고, 『경국대전』은 필수로 하였다.

변천

조선후기 들어 증광무과복시의 시험 과목에 다소 변화가 나타났다. 18세기 전반에 편찬한 『속대전』에 의하면 먼저 새로운 무예인 조총과 편추(鞭芻)가 추가되었고, 기사는 기추(騎芻)로 바뀌고, 격구는 없어졌다. 따라서 이후에는 조총 등이 들어오면서 목전·철전·편전·기·기창·조총·편추 7과목으로 바뀌었다. 강서는 증광무과복시에서는 단지 『무경칠서』와 사서오경 중 합하여 한 책을 원하는 바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후 18세기 후반에 편찬한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는 『무경칠서』 중 『오자(吳子)』를 제외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무과총요(武科總要)』
  • 나영일, 『『무과총요』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 윤훈표, 「조선초기 무과제도 연구」, 『학림』 9 , 1987.
  • 정해은, 「조선후기 무과급제자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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