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中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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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6월에서 7월 사이 연중 가장 더운 기간에 세 번 드는 삼복 중 두 번째 복일.

개설

여름철 가장 더운 기간인 삼복(三伏) 중의 초복(初伏) 다음으로 드는 복일이다. 중경일(中庚日)이라 불리기도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일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에 들며, 중복은 네 번째 경일에 든다. 복일은 모두 경일에 든다. 경은 곧 금기(金氣)를 말하는데, 복(伏)이란 금기(金氣)가 엎드려 숨어 있다는 뜻이다.

중복은 초복과 함께 하지를 기점으로 한다. 중복은 24절기 중 대서(大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드는데, 초복을 지나 중복이 드는 시기에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였다. 중복에는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양식을 먹는 것이 관례였다. 왕은 더위가 시작되는 초복부터 말복이 끝난 이후인 처서(處暑)까지 정사 보기[視事]를 정지하는 것이 관례였다. 중복에는 한재(旱災)로 인해 가뭄이 심해져 국가에서는 기우제를 지냈다. 농가에서는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며 의례를 지내기도 하였다.

연원 및 내용

중복에는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개장[狗醬]과 계삼탕(鷄蔘湯)을 먹고, 또한 열을 식히고 역병(疫病)을 예방하기 위해 팥죽을 쑤어 먹었다. 삼복에 개를 시절 음식으로 먹게 된 것은 중국 춘추시대 진덕공(秦德公)이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낸 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에 팥죽을 먹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팥이 차가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더위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초복부터 말복까지는 궁중에서 고위관리들과 관청에 나무로 만든 빙표(氷票)를 주어 궁의 장빙고(藏氷庫)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초복 전에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으로 들판이 갈라지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가 많았다. 모내기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여 기우제를 빈번하게 지냈다. 1809년(순조 9)에 순조는 중복이 가까워지기 전까지 기우제를 8번이나 지냈는데도 가뭄이 계속되어 친히 남단(南壇)에서 기우제를 지내겠다는 하교를 내리기도 하였다(『순조실록』 9년 6월 9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중복에는 초복과 말복과 함께 팥죽을 먹기도 하였다. 팥죽은 새알심을 넣어 만든 것으로, 팥이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는 음식이라 믿어, 삼복에 이것을 먹고 악귀를 쫓고 무병하려는 데서 나온 풍습이다. 또한 더위를 피하기 위해 복일에 약수터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을 찾아 약수를 마시며 하루를 시원하게 노는[淸遊] 풍습도 있었다.

중복에 농가에서는 밀부침개 혹은 밀전병과 과일 등을 장만해 논밭에 나가 축원한 뒤 거기에 음식을 조금씩 떼어 놓는 의례를 행하였다. 이는 열매가 잘 맺기를 축원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목은집(牧隱集)』
  • 『식산집(息山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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