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관(中國借款)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청국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효율적으로 침탈하기 위하여 제공한 차관.

개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국은 종래의 전통적인 조공 관계를 청산하고 무력에 의해 조선의 내정에 직접 간섭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국은 재정고문을 파견해 조선의 재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제국주의의 경제침탈 방식인 차관을 이용해 각종 이권을 확보해 나갔다. 조선 최초 차관은 일본이 아닌 청국에 의해 도입되었고, 1894년까지 그 규모도 일본을 압도하면서 조선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82년 7월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국은 조선을 실질적으로 종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시켜 나갔다. 청국은 무력으로 흥선대원군 정권을 붕괴시킨 다음 고문 등을 파견해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오장경(吳長慶, [우창칭])과 위안스카이([袁世凱], Yuan Shikai)는 병권을, 재정고문으로 파견된 진수당(陳樹棠, [천수탕])은 재정권을, 이홍장(李鴻章)이 파견한 묄렌도르프( Möllendorff, Paul George von)는 외교권을 각각 장악하였던 것이다. 특히 1882년 8월 청국은 조선에 압력을 가하여 가장 불평등하고 자국의 특권을 강요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하게 하고, 그 전문에 조선이 청국의 속방임을 명문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국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경제 침탈 방식인 차관을 조선에 제공함으로써 각종 이권을 확보해 나갔다. 당시 청국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이권을 빼앗기고 재정도 궁핍해지는 등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개항 이래 독점적으로 진행된 일본의 조선에 대한 경제 침탈을 막고 청국 중심의 경제 침탈 기반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청국은 1882년부터 인삼·광산·해관을 담보로 차관을 제공하여 각종 이권을 침탈하고 조선의 해관을 장악하면서 조선의 내정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갑신정변(1884년, 고종 21) 후 주차조선통리교섭통상사의로 파견된 위안스카이는 차관 제공의 실익과 영향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청국차관이 가져오는 6대 이익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1) 고종의 자주정책을 분쇄할 수 있다, 2) 조선의 재정을 조정하고 각종 이권을 획득할 수 있다, 3) 조선의 내치와 외교를 간섭할 수 있다, 4) 서양과 일본의 조선 간섭을 배제할 수 있다, 5) 청차관의 제공 독점으로 ‘상국(上國) 속방체제(屬邦體制)’를 유지할 수 있다, 6) 조선해관의 운영권과 수세권을 장악할 수 있다 등이었다.

이처럼 개항 이후 조선 최초 차관 도입은 일본이 아닌 청에 의해 이루어졌고, 1882년부터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까지 차관 제공 면에서 청은 일본을 압도하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자본주의 침탈의 고도 전략인 차관공세를 청국이 실시하였다는 점이다. 차관 도입의 문제는 당시 민중의 시야에도 포착이 되었는데, 1894년 농민전쟁 당시 전봉준은 민중의 생활고와 직결된 조선 정부의 국채를 고발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내용

청국에서는 1882년 조선에 최초로 군사유학생 경비 마련을 목적으로 초상국(招商局) 차관 27,000량을 인삼세를 담보로 이자율 월 6~7%에 제공하였다. 이어 조선 정부는 해관을 창설하기 위하여 해관세, 홍삼세, 광세를 담보로 빌린 300,000냥을 비롯해서 기기 구입, 서로전선 가설, 외채 상환, 일본에 대한 방곡령 배상금 등 각종 명목으로 청국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왔다. 이러한 차관으로 조선에 대한 청국의 영향력은 크게 증대되었다.

변천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패하면서 조선 내 청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와 더불어 중국차관은 사라지고 일본이 주도하는 차관만이 조선에 제공되었다.

참고문헌

  • 김정기, 「조선정부의 청차관도입」, 『한국사론』 3, 1976.
  • 김정기, 「청의 조선정책(1876~1894)」, 『1894년 농민전쟁 연구』 3,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