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대전(朱子大全)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국 남송대 학자 주희(朱熹)의 문집.

개설

『주자대전(朱子大全)』은 원래 중국의 송나라 때 사람인 주희의 문집으로, 1771년 간사(刊寫) 되었는데, 간사지 및 간사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회암선생주문공문집(晦庵先生朱文公文集)』ㆍ『주자문집』ㆍ『주자문집대전』이라고도 한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저작한 모든 학설을 주로 하고, 여러 학자들의 질의(質疑)에 대해 회답한 편지들과 시(詩)ㆍ기(記)ㆍ명(銘)ㆍ비문(碑文)ㆍ묘지(墓誌) 등 문예에 관한 저작들을 함께 모은 방대한 저작이다.

편찬/발간 경위

본래 『주자문집(朱子文集)』, 『회암문집(晦庵文集)』 혹은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으로 불렸던 이 책은, 주희(朱憙)의 아들 주재(朱在)가 역은 것으로 총 100권에 따로 속집 5권과 별집 7권이 있다. 『주자어록(朱子語錄)』이라고도 하는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전체 138권인데, 원래 주희의 문인이 기록했던 것을 후에 제자 황사의(黃士毅)가 수집, 정리하고 부류에 따라 편목을 배열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본편 100권은 보존되어 오던 것을 모은 것이고, 별집 11권은 그의 문인 여사로(餘思魯)가 모은 것인데, 속집 10권은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것들을 모아 완전히 편찬한 것은 송 도종(度宗)함순(咸淳) 원년(1265)이며, 저자의 후손 옥(玉)이 교정하여, 『주자대전집(朱子大全集)』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의 별집 다음에 있는 유집(遺集) 2권은 1771년(영조 47) 본서를 간행할 때 저자의 시문 중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서, 우리나라에서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부록(附錄) 12권에는 도통원류(道通源流), 세계원류(世系源流), 부사유언(父師遺言), 유상(遺像), 송사본전(宋史本傳), 문인서술(門人敍述), 제문(祭文), 행장(行狀), 연보원본(年譜原本), 연보별본(年譜別本), 택사서원정방(宅祠書院亭坊), 사원기제(祠院記題), 제편서발(諸編序跋), 편저서목(編著書目), 묵적유기(墨蹟類記), 제명록(題名錄), 당금록(黨禁錄), 변무록(辯誣錄) 등 저자에 관한 후인들의 문장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에 이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바 있고, 1575년(선조 8)에도 역시 을해자로 간행하였으며, 그 뒤 각 지방에서도 몇 번 간행한 적이 있다. 비록 후기의 지방간본(地方刊本)이긴 하지만 ‘만기(萬機)’, ‘홍제(弘薺)’라는 정조의 인기(印記)가 있어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자대전차의』 등 『주자대전』의 주석서가 여러 편 편찬되었다.

서지 사항

100권 49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4.0cm, 가로 23.0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주희(1130~1200)는 남송(南宋)의 철학자이자, 교육가로서 자(字)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이다. 시호는 문(文)으로 주문공(朱文公)이라 불리며, 만년에 건양(建陽) 고정(考亭)으로 옮겨, 자양서원(紫梁書院)에서 강의를 한 이후로는 고정 혹은 자양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휘주(徽州) 무원 사람으로 복건(福建) 연평(延平) 용계(龍溪)에서 태어난 주희는, 일찍이 천주동안주부(泉州同安主簿), 지남강군(知南康軍), 비각수찬(秘閣修撰)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으며, 학술적으로는 정호(程顥)와 정이의 학설을 전면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민학을 창립, 중국 성리학의 집대성자가 되었다. 그의 학설은 일찍이 일본에도 전수되어 도쿠가와(德川)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저술이 매우 많아, 이 두 권 외에도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 『주역본의(周易本義)』, 『시집전(詩集傳)』, 『초사집주(楚辭集註)』 등이 있으며, 『통감강목(通鑒綱目)』, 『근사록(近思錄)』 등을 편찬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典)』은 주희의 논저와 서찰, 주장주장, 시가 등을 담고 있으며,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주희가 강학한 어록을 모은 것으로 이기(理氣)와 귀신, 성리(性理) 등 26 문(問)으로 나뉘어 있다. 전(前) 6 권은 주로 철학의 문제를 토론하고 있으며, 나머지 각 권은 정치, 사학, 문학,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두 책에서 주희는 자신의 학술적 견해를 전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예컨대 이(理)의 문제에 대하여는, 이정(二程)의 학설을 계승함과 동시에 장재(張載)의 기(氣) 이론을 흡수하여, 천지지간에 “이(理)가 있고, 기(氣)가 있으나, 이(理)로 근본을 삼으니, 이(理)가 기(氣)를 앞선다.”고 인식하였다. 또한 격물치지를 제시하며 ‘천명지성(天命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인성론을 논하여 천리와 인욕의 대립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주희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황(李滉)ㆍ기대승(奇大升) 등이 발췌하여 편찬한 것을 비롯하여, 1575년(선조 8)에는 유희춘ㆍ조헌(趙憲) 등이 문집과 어류(語類)로 나누어 간행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없어졌다. 그러나 정묘왜란 후 주자학에 입각하여 조선왕조를 재조정ㆍ유지하려는 기운이 노론 집권층을 중심으로 팽배하게 되면서 송시열(宋時烈)이 『주자대전』에 주석을 붙인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김창협(金昌協)이 송시열과 토론한 내용을 적은 『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 등이 간행되었으며, 1771년(영조 47) 홍계희(洪啓禧)의 교정으로 『주자문집대전(朱子文集大全)』이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 김문식, 「조선본 『주자대전』의 간행과 활용」, 『한중인문학회 특별기획 국제학술대회 발표문집』, 한중인문학회, 2007.
  • 김문식, 「송시열의 『주자대전』 연구와 편찬」, 『한국문화』 제43집,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08.
  • 류준필, 「퇴계(退溪)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주자문헌(朱子文獻) 편집 방식-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권1과 『주자대전(朱子大全)』권 24~26의 대비-」, 『퇴계학논집』 14권, 퇴계학연구원, 2008.
  • 이향준, 「한국 성리학의 해석학적 발전- 『주자대전(朱子大全)』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율곡사상연구』 25권, 율곡연구원, 2012.
  • 정기철, 「주자대전 의례석궁 연구」, 『대한건축학회지』 115, 대한건축학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