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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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주자대전』 중에서 난해한 구절을 뽑아 주석을 붙인 책.

개설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주자대전』 중에서 난해한 구절을 뽑아 주석을 붙인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송시열의 자서(自序)와 연보에 의하면, 송시열은 손자 주석(疇錫)의 도움과 김수항(金壽恒)의 자문을 받아, 이 책을 편성하였다고 한다. 책이 완성된 뒤에도 혹시나 미진한 부분이 있을까 염려하여, 정정하기를 계속하던 중에 그의 나이 83세로 세상을 떠나던 해 2월에 서문을 써서, 권상하(權尙夏)에게 주며,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마무리를 지을 것을 당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책은 송시열이 죽은 뒤에 그의 제자인 권상하가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협 등과 최종적으로 수정, 보완해서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권두에 1689년(숙종 15)에 쓴 저자의 자서가 있고, 권말에 발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서지 사항

121권 17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5.2cm, 가로 21.4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주자대전』은 원집이 사(詞)ㆍ부(賦)ㆍ금조(琴操)ㆍ시(詩) 합 10권, 봉사(封事) 2권, 주차(奏箚) 2권, 강의(講義)ㆍ의장(議狀)ㆍ차자(箚子) 합 1권, 주장(奏狀) 4권, 신청(申請) 2권, 사면(辭免) 2권, 서(書) 41권, 잡저 10권, 서(序) 2권, 기 4권, 발 4권, 명ㆍ잠ㆍ찬ㆍ표ㆍ소계(疏啓)ㆍ혼서(婚書)ㆍ상량문 합 1권, 축문 1권, 제문 1권, 비(碑) 2권, 묘표(墓表) 1권, 묘지명 4권, 행장 4권, 공이(公移) 2권으로 되어 있고, 속집은 서(書)ㆍ발 등 합 11권, 별집은 서(書)ㆍ시ㆍ잡저ㆍ공이 등 합 10권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주자대전』의 편차 순, 판 수(板數)를 따라 차례대로 어려운 단어나 구절을 뽑아 대서(大書)하고, 그 아래에 소자(小字)로 분주(分註)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주석의 범위는 어구ㆍ인명ㆍ사건 등을 총망라하였으며, 필요한 경우 원전이나 출전을 밝혀 설명하기도 하였다.

우암(尤庵)송시열은 17세기 조선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동국18현(`東國18賢)’의 한 사람이며, 율곡(栗谷)-사계(沙溪)를 잇는 기호학파의 적전(嫡傳)이었다. 그는 병자호란을 맞아, 효종과 함께 북벌의리를 주도했으며, 평생 의리의 실천에 앞장섰다. 그는 기본적으로 율곡학의 기반 위에서 그의 성리학을 시작하였다. ‘이기이원(理氣二元)’의 세계관, 이(理)와 기(氣)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기(理氣)의 개념적, 가치적 구별을 하는 점, 이(理)의 발용을 부정하고, 오로지 기발(氣發)만을 인정하는,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의 입장 등이 그렇다.

또 심성론에 있어서도, 심성정(心性情)에 대한 논의, 사단칠정(四端七情), 인심도심(人心道心)에 대한 입장에 있어, 율곡이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가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에서 퇴계와 사계의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 해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형도기삼건물사설(形道器三件物事說’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율곡을 계승하여 ‘심시기(心是氣)’를 말하여, 우암을 주기론자(主氣論者)로 보는 논거가 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성(性)을 이(理)로 본 데 대해, 심(心)을 기(氣)로 본 표현이며, 심이 곧 기라는 존재론적 설명이 아니라, 심의 작용성과 성을 담아내는 기능을 기에 비하여 사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송시열이 『주자대전』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한 주석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은, 1674년(현종 15) 갑인예송(甲寅禮訟)에서 패배하고, 장기(長鬐)로 유배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송시열은 1678년(숙종 4) 『정서분류(程書分類)』와 함께 『주자대전차의』의 초고본을 완성하고‚ 1679년(숙종 5)에는 『주자어류소분(朱子語類小分)』을 완성한다. 그 후 이 책은 송주석(宋疇錫) 및 문인 권상하(權尙夏;1641-1721)‚ 이희조(李喜朝;1655-1724)‚ 민태중(閔泰重) 등에 의해 교정되었고‚ 송시열의 서문은 1689년(숙종 14)에 작성되었으며‚ 1715년(숙종 41) 교정본이 비로소 간행된다.

송시열은 “근래 사문(斯文)의 재액이 심하여, 『주자대전』의 문자가 흑수(黑水)에게 모독을 당해도 세인(世人)이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믿고 따르는 자가 있다.”고 경계하고‚ 그 이유는 “세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것이며‚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이언(異言)에 빠진다.”고 설명하였다.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는 이후 김창협과 그의 문인 어유봉(魚有鳳, 1672~1744)에 이르러 최종 완성된 『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 김민재(金敏材, 1699~1766)의 『주자대전차의보(朱子大全箚疑補)』‚ 이의철(李宜哲, 1703~1778)의 『주자대전차의후어(朱子大全箚疑後語)』‚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주자대전차의문목표보(朱子大全箚疑問目標補)』 등을 거쳐, 이항로(李恒老, 1792~1868)ㆍ이준(李埈, 1812~1853) 부자(父子)의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로 종합된다.

의의와 평가

『주자대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주석서는 중국에서도 달리 전하는 것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국내의 주자학 연구자에게 『주자대전』을 이해함에 있어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동양의 주자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강문식, 「김창협의 주자서 연구와 『주자대전차의문목』」, 『한국사연구』 160, 한국 사연구회, 2013.
  • 송혁기, 「조선의 주자학과 『주자대전차의집보』」, 『한자한문연구』 제10호, 고려대학교 부설 한자한문연구소.(2015)
  • 이향준, 「한국 성리학의 해석학적 발전-『주자대전(朱子大全)』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율곡사상연구』 25권, 율곡연구원, 2012.
  • 황의동, 「우암의 성리학과 학문적 위상」, 『한국사상과 문화』 42권, 한국사상문화 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