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수라(晝水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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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에서 왕에게 올리는 점심을 높여 이르던 말.

개설

가뭄이 들면 왕과 왕비는 단지 물에 만 밥인 수반(水飯)만을 드시었다. 그리고 궁중에서 돌아가신 대왕대비께 올리는 상식 중 낮수라[晝水剌]는 주다례상으로 올렸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수라라는 용어가 6회 나오는데, 실제 음식 내용은 알 수 없다. 성종대에 가뭄이 심할 때에 왕과 왕비의 낮수라는 수반만을 올리라고 하였다(『성종실록』 12년 7월 12일). 1600년(선조 33) 사옹원 제조가 상중의 수라에 대해 아뢰었다. 예문(禮文)에 의하면 대왕대비의 빈궁을 차린 후에는 아침저녁 상식(上食)만 있고 낮수라는 없다고 되어 있다. 사옹원(司饔院) 역시 상고할 만한 등록이 없으나 듣기로는 주다례(晝茶禮)가 있어 국수·떡·탕·부침·과일 등을 차리는 규식이 있다고 하여 폐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선조실록』 33년 6월 30일).

변천

1700년대 궁중의 일상식은 1795년(정조 19) 정조가 화성현륭원(顯隆園)에 행행(行幸)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찬품(饌品)조에 남아 있다. 음력 윤2월 9일 창덕궁을 출궁하여 16일 환궁까지 8일간의 자궁·왕·군주(郡主)에게 올린 일상식의 기록이다.

주수라는 10일은 사근참(肆覲站)에서, 12일은 원소참(園所站)에서, 15일은 사근참에서, 16일은 노량참(鷺梁站)에서 총4회 올렸다. 10일과 15일 사근참에서 드신 주수라의 상차림은 찬물은 거의 같고 일부만 바뀌었다. 자궁인 혜경궁께 올리는 상은 원반(元盤)과 협반(挾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검은 칠을 한 족반으로서, 원반에는 유기(鍮器)로 10기를 올리고, 협반에는 화기(畵器)로 3기를 올렸다.

상차림 내용은 반(飯) 1기는 팥물로 지은 밥이고, 갱(羹) 1기는 대구탕이고 돌아오는 날인 15일은 배추탕으로 했다. 조치 2기로 양볶이와 붕어잡장[鮒魚雜醬]이고, 구이 1기는 게다리[蟹脚]와 연복구이이다. 돌아오는 날은 추복과 낙지주이로 했다. 자반 1기는 불염민어·약건치·약포·광어·전복쌈이고, 돌아오는 날은 어포·육포·편포·염민어·굴비로 했다. 젓갈(醢) 1기는 명태란·연어란·하란·명태이리젓이며, 돌아오는 날은 석화·조리란·게·자하해로 했다. 1800년대 고종 재위 시에는 주수라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1987.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김호, 「조선시대 食治 전통과 왕실의 식치」, 『조선시대사학보』45 , 2008.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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