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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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차 등의 액체를 따라 마시는 그릇.

개설

종(鍾)은 술이나 차를 담아 마시는 그릇이다. 주로 은(銀)이나 백자(白磁)로 만들었으며, 일부 백자종(白磁鍾)에는 청화 안료로 문양을 그려 화려함을 더했다. 왕실의 연회에서 술그릇이나 찻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종은 일반적으로 술, 차, 물 등의 액체를 담아 마시는 그릇으로 죽을 담는 용도로도 쓰였다(『태종실록』 8년 5월 26일). 조선시대 기록에 등장하는 은종(銀鍾), 자종(磁鍾), 백자종(白磁鍾), 사종(沙鍾) 등의 용어로 보아 종은 은이나 백자 등 자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종(靑畵白磁鍾)도 만들어졌다. 한편 조선 왕실의 장례에는 와종(瓦鍾)이 명기(明器)로 부장되었으므로 예기(禮器)로 사용된 종은 질그릇으로도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23년 9월 14일).

문헌 기록에 다종(茶鍾)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종이 찻그릇으로 널리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혼전과 능묘에 올리는 다례(茶禮)에서 다종이 다병과 함께 예기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28년 7월 19일).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宴會)에서도 다종에 차를 담아 접대했다. 명나라는 조선에 청자나 백자로 만든 다종을 선물했으며 청화백자로 제작한 종도 보냈다(『태종실록』 17년 7월 21일), (『세종실록』 10년 8월 11일), (『세종실록』 11년 1월 27일).

종은 술을 담아 마시는 주기(酒器)로도 널리 쓰였다(『세종실록』 29년 9월 1일). 1461년(세조 7)에 왕은 좌의정신숙주(申叔舟)에게 박 덩굴을 그리고 시문(詩文)을 쓴 화종(畵鍾)을 소주 5병과 함께 하사했다(『세조실록』 7년 6월 4일).

조선시대에 사용된 종은 대·중·소로 구분되었다(『태종실록』 6년 9월 12일), (『태종실록』 8년 8월 1일). 종의 크기를 구분하는 분명한 기준은 알 수 없지만, 1417년(태종 17) 무렵에 성균관에서 사용된 종은 사발(沙鉢) 하나 정도의 용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태종실록』 17년 6월 12일). 옛날 중국에서는 종을 곡물을 계량하는 단위로도 사용했다(『선조실록』 34년 1월 17일).

참고문헌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방병선,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돌베개, 2002.
  • 윤용이, 『韓國陶瓷史硏究』, 문예출판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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