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전장(助戰將)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평안도나 함경도의 적변에 대비하여 변경 방어를 위해 중앙에서 파견한 무장.

개설

조전장은 평안도나 함경도의 적변에 대비해 파견되었다. 조전장은 파견된 지역의 절도사의 지휘를 받았다. 조전장은 군관을 거느리고 갔으며, 여러 진(鎭)으로 파견되어 가서 변방의 방비를 정돈했다. 조전장은 각 진의 요새지(要塞地)를 나누어 지켜 불의의 변에 대비했다.

담당 직무

조전장은 파견된 지역의 절도사의 지휘를 받으며, 각 진의 요새지로 흩어져 불의의 변에 대비하였다. 조전장이 파견되어야 할 후보지로서의 요해지는 다음과 같다. 평안도의 압록강과는 멀지만 강계(江界)와의 거리가 멀어 적의 침입이 있게 되면 달려와서 구원하기 어려운 상토구자(上土口子), 적이 침입하는 길목에 있는 이산진(理山鎭)과 창성진(昌城鎭), 벽동진(碧潼鎭), 방어가 긴요한 벽단(碧團)·창주(昌洲) 등의 구자(口子), 위원진성(渭原鎭城), 구령구자(仇寧口子), 아이구자(阿耳口子), 인산(麟山) 등이다. 함경도의 삼수(三水)와 혜산(惠山)도 조전장이 파견되어야 할 곳이었다. 조전장이 수비하는 곳은 병조에서 정했다. 1475년(성종 6) 7월 평안도로 파견된 조전장의 수비소는 다음과 같다. 상토(上土), 위원(渭原), 이산(理山), 아이(阿耳), 벽동(碧潼), 벽단(碧團), 창주(昌洲), 창성(昌城), 구령(仇寧), 방산(方山), 인산(麟山), 혜산(惠山)이었다. 이때 조전장은 각기 군관 8명을 거느리고 갔다. 대개 조전장은 해당 도의 절도사를 지낸 사람들이 파견되었으나, 조전장으로 파견되고 나면 그 도 절도사의 지휘를 받았다. 또 역로의 여러 진에서 폐해를 끼친 조전장과 군관에 대해서는 죄를 물은 뒤 보고하도록 하였다.

변천

1474년(성종 5) 10월 평안도의 성식(聲息)이 끊이지 아니하므로 조전장을 보내어 방어에 대비하도록 했다(『성종실록』 5년 10월 1일). 1475년 1월 조전장을 보내어 호송군(護送軍)을 거느리고 사은사(謝恩使)한명회(韓明澮)를 호송하도록 했다가 맞아 오기도 했다(『성종실록』 6년 1월 13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