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조약(朝美條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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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고종 19) 인천 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 사이에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

개설

1866년(고종 3)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일으켜 강제로 조선의 개항을 이루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76년(고종 13) 조선이 일본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문호를 개방하자, 미국 내에서 다시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본의 중재를 통한 조선의 개항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실제로 자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중재에 의한 교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청의 북양대신이홍장(李鴻章)은 슈펠트를 천진(天津)으로 불러 조선 개항에 대한 문제를 협의하였다. 그 결과 조선은 1882년(고종 19) 청의 알선으로 서양 열강과는 최초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76년 조선과 일본이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통하여 통상 관계가 성립되어 조선이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되자 신미양요 이후 중단되었던 미국의 조선 개항 문제가 새로이 대두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통하여 조선의 개항을 유도해 내려고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대하여 1879년 청국의 이홍장은 조선과 미국 사이의 수교를 성립시킴으로써 일본의 독점적인 조선 침투를 견제하고 국제사회에 청국의 위신을 높이고자 당시 영부사이유원(李裕元)에게 미국과의 수교를 권고하였다. 이 권고안은 국제법에 대한 불신으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조선 정부가 이 문제를 재검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880년 조선은 당시 현안이었던 관세와 공사(公使)의 서울 상주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에 수신사김홍집을 파견하였다. 이때 김홍집은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 직원인 황준헌(黃遵憲)에게 『조선책략(朝鮮策略)』을 건네받았다. 이 『조선책략』은 하여장(何如璋)이 황준헌에게 정리시킨 것으로 중국과 친밀해야 한다는 ‘친중(親中)’, 일본과 결탁해야 한다는 ‘결일(結日)’,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는 ‘연미(聯美)’를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개국·균세·자강책이었다. 『조선책략』은 조선 정부 내에 큰 영향을 미쳐 조선의 대외정책이 개국정책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홍장은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 청국의 동쪽 울타리로 여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조선침략을 저지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상해 왔다. 이러한 구상 아래 이홍장은 제국주의 열강 중 상대적으로 영토 침략 야욕이 적다고 판단된 미국을 끌어들여 조선과 조약을 맺도록 적극 나섰다. 미국과의 수교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조선 정부는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선 측 전권대신신헌과 미국 측 전권공사슈펠트 사이의 전문 14개조로 이루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내용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모두 14개의 전문과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조약의 주요 내용은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다른 한쪽 정부는 원만한 타결을 위하여 주선(거중조정)한다. 양국은 각각 외교 대표를 상호 교환하여 양국의 수도에 주재시킨다, 치외법권은 잠정적으로 한다, 수출입상품에 대한 관세부과권은 조선 정부에 속한다, 최혜국대우를 한다 등이다. 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최초로 국교를 맺음으로써 실질적으로 문호를 개방하였다는 점, 강화도조약의 무관세 조항과 달리 수출입 상품에 대한 협정 관세를 규정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조약은 최혜국대우 규정이 새로 추가되고 치외 법권을 보장하였던 불평등조약이었으며, 이후 조선이 서양 열강들과 조약을 체결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변천

조약체결 이후 조선은 미국의 외교적 힘을 이용하여 독립을 유지하려 하였고, 지속적으로 친미론을 지향하는 바탕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원모, 『한미 외교관계 100년사』, 철학과 현실사, 2002.
  • 최덕수 편, 『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 열린책들, 2010.
  • 이보형, 「Schufeldt 제독과 1880년의 조미교섭」, 『역사학보』 15,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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