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현(堤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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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제천현(堤川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충주목에 속한 현이다. 고려시대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15세기에 호수가 415호, 인구가 1,235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93명, 선군(船軍) 70명이었다. 토지는 3,915결인데, 대부분이 밭이고 논은 그 가운데 1/7에 불과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제천군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내토군(柰吐郡)이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내제군(柰堤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제주(堤州)로 고쳤고, 995년(고려 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고려 목종 8)에 자사를 폐지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원주(原州)의 임내로 삼았다. 1106년(고려 예종 1)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에서도 이 지위를 유지하다가 1413년에 현감으로 고쳤다.

제천은 죽령과 조령의 중간 지대에 있어 소백산맥을 통하는 요충지이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는 원주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로 남하하는 길목이었다. 거란과 몽골의 침공 때 격전지가 되었다. 관방시설인 덕주산성(德周山城)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로의 중심이 조령, 죽령 쪽으로 바뀌어 비중이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중요한 거점이었다. 교통의 요지이지만 산지라 수송이 불편해서 전세나 대동미를 돈으로 바꿔서 내도록 하였다(『순조실록』 28년 2월 2일).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문과 출신과 음서 출신을 교대로 수령으로 임명하는 곳이었다. 관속은 좌수 1명, 현감 2명 군관 15명, 아전 11명, 지인 10명, 사령 11명, 관노 11명, 관비 9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조선후기에도 현을 유지하였다. 한말에는 다시 군사적 비중이 높아져 덕주산성을 복구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토지는 밭 1,854결, 논 661결이었다. 7개 면으로 구성되었으며, 가호는 편호 2,673호, 남자 5,309명, 여자 5,832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의 23부제 개혁 때 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풍군과 충주군 덕산면 일부를 병합해서 군의 규모가 커졌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