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정(濟川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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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한강변 언덕에 있던 왕실의 별장 겸 정자.

개설

제천정(濟川亭)은 왕실의 별장이자 외국 사신들이 한강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자주 찾던 장소이다.

위치 및 용도

오늘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 고려시대부터 정자가 있었는데, 조선초까지 한강정과 한강루라 불렸다. 이것을 1456년(세조 2)에 제천정이라고 명명했다. 왕이 한강을 유람할 때 신하들을 위로하거나, 명나라에서 사신이 올 경우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활용했다(『세조실록』 5년 4월 10일)(『세조실록』 10년 5월 28일)(『예종실록』 1년 4월 18일)(『성종실록』 11년 6월 2일).

변천 및 현황

고려 때부터 같은 자리에 있던 정자를 1456년 이후에 제천정이라 불렀고 연회 장소로 활용하였다. 성종대에는 낡은 제천정의 수리에 대한 의견이 있었고(『성종실록』 5년 윤5월 8일), 백성들의 처지가 곤궁하여 수리에 대한 반대가 있었으나 중수했다(『성종실록』 25년 8월 25일). 연산군은 농사짓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동교(東郊)에 나설 때 제천정에서는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는 장소로 활용했고(『연산군일기』 6년 5월 22일), 주변 경관 관리를 위해 인가를 철거하기도 했다(『연산군일기』 12년 7월 3일). 조선시대 왕들은 동교에 나아갈 적에 신하들에게 ‘제천정’이란 글자로 오언율시를 짓게 하거나(『중종실록』 15년 8월 28일), 전선(戰船)과 관무재(觀武才) 등 무사의 재예를 시험하는 장소로 이용했다(『명종실록』 13년 5월 2일).

『궁궐지(宮闕志)』에는 1558년(명종 13)에 왕이 제천정에서 한강의 수전 훈련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주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지속적인 수리를 명하기도 했다(『중종실록』 31년 윤12월 29일). 인조대까지 중국 사신을 접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고(『인조실록』 4년 6월 16일),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제천정 터에 표지석으로 과거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형태

성종대에는 제천정의 규모가 작다는 의견이 계속 있었고(『성종실록』 12년 6월 25일), 1491년(성종 22) 철거한 후에 규모를 확장한 기록이 있으나(『성종실록』 22년 4월 4일) 정확한 규모와 형태는 알 수 없다.

관련사건 및 일화

제천정은 한강의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에 위치한 정자이다. 월산대군(月山大君)이 「한도십영(漢都十詠)」에서 한양의 빼어난 경관을 읊었는데 제천정이 포함되었다. 제천정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을 ‘제천완월(濟川翫月)’이라 하여 맑은 하늘 동녘의 달이 비추는 한강 색이 맑고 아름다운 장소로 서술했다. 대신들이 모여 망년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서거정(徐居正)은 12명의 동년배와 제천정에 모여 망년회를 개최하고 「한강루망년회석상(漢江樓忘年會席上)」이라는 시를 남겼다.

참고문헌

  • 김영상, 『서울명승고적』,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1958.
  •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누정』,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 임의제, 「조선시대 서울 누정의 조영특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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