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홍씨(貞嬪洪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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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63년(명종 18)~1638년(인조 16) = 76세].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宣祖)의 후궁.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판(參判)에 추증된 홍여겸(洪汝謙)이고, 어머니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내자시(內資寺) 부정(副正)조명원(曺明遠)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홍창(洪閶)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홍소종(洪昭宗)이다.

선조의 후궁

홍정빈(洪貞嬪)은 1580년(선조 13) 선조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첩지를 받고 입궐하여 봉상시동(奉常寺洞)에 있는 궁에서 머물었다.(『선조실록』 13년 5월 26일),(『선조실록』 13년 5월 26일) 이후 정1품 빈(嬪)으로까지 승격하였으나 정확한 때는 알 수 없다. 다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기록에서 그녀를 정빈으로 칭하고 있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빈에 책봉된 것을 알 수 있다.(『선조실록』 25년 5월 8일)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 궐 밖 사가에서 거처하다가, 인조(仁祖) 때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인해 홍정빈은 제천지역으로까지 피난을 갔다. 이때 인조는 선왕의 후궁인 홍정빈에게 각별히 음식을 올리라 명하였다.(『인조실록』 5년 2월 28일) 이후 홍정빈은 1638년(인조 16)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여파로 아직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하던 때였다. 그로 인하여 홍정빈의 장례는 예법에 맞게 치러지지 못했다.(『인조실록』 16년 11월 18일),(『인조실록』 16년 11월 18일)

묘소와 후손

홍정빈의 무덤은 본래 수원광교산(光敎山)에 있었으나, 1645년(인조 23) 통진현 북가좌동으로 옮겼다. 현재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에 위치한 애기봉 출입관리소 앞에 있다.

홍정빈은 선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는데 1남은 경창군(慶昌君)이주(李珘)로 좌의정에 추증된 조명욱(曺明勗)의 딸과 혼인하였다.(『선조실록』 40년 3월 4일),(『광해군일기』 2년 7월 1일) 1녀는 정정옹주(貞正翁主)로 진안위(晉安尉)유적(柳頔)과 혼인하였다. 그런데 혼례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유적이 부친상을 당해 혼례식이 한 차례 연기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39년 4월 10일)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선조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