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산성(正方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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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황해도 정방산에 축성한 성곽으로, 병자호란 시 청에 저항한 산성.

개설

고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도원수김자점(金自點)의 지휘 아래 개축하였다.

위치 및 용도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리정방산에 있는 성곽으로 가파른 절벽의 경사면을 깎아 만든 단애성벽(斷崖城壁)이다.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요충지로 방위시설을 갖추고 치성(雉城)을 설치하였다.

변천 및 현황

정방산성은 1633년(인조 11) 도원수김자점의 지휘 아래 개축하여 청의 침입에 대비하였다(『인조실록』 11년 2월 20일).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 성을 근거로 청에 대항하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1895년(고종 32)까지 산성별장(山城別將)을 두고 있었다. 현재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둘레 12㎞의 산성으로 성의 북쪽은 정방산의 험한 절벽을, 서쪽은 남산령을, 동쪽은 지봉산의 서장대(西將臺)와 연결되는 등성이를, 남쪽은 서장대에서 동쪽으로 정방골에 내리뻗은 능선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벽은 모두 그 바깥 경사면을 깎아 내리고 절벽과 능선을 휘감아 바깥 면만 솜씨 있게 쌓아 올린 단애성벽이다.

동·서·남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남문 부근의 성벽 높이는 7~9m에 달한다. 성벽 위에는 톱날같이 성가퀴를 쌓고 활을 쏠 수 있는 구멍 1,336개소와 총포를 쏠 수 있는 포 구멍 4,800개소를 두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1개씩 설치하였는데 그중 서문과 북문은 돌축에 문 위쪽이 반원형의 무지개 모양인 홍예문(虹霓門)을 내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웠다. 서문의 높이는 6.3m이며, 너비는 4.2m이며, 동문도 형태와 규모가 같다. 남문은 정방루(正方樓)라고 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각지붕 건물이다.

성안에는 남장대·서장대·동장대·안주장대(安州將臺) 등 장수들이 올라서서 명령하고 지휘하던 장대들이 있다. 또한 성안에는 병영과 무기창고·군량창고 등 집터들이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참고문헌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 통일원, 1994.
  • 양태진, 『북한의 문화유적순례』, 백산출판사, 199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