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貞觀政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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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 사역원의 몽학에서 사용한 몽골어 교재.

개설

『정관정요(貞觀政要)』는 1430년(세종 12) 상정소(詳定所)에서 제학(諸學)의 취재(取才)에 출제서를 정하여 보고한 계문(啓文)(『세종실록』 12년 3월 18일)에 몽골어의 역관 취재에 사용할 출제서로 다른 몽골어 교재들과 함께 등재되었다. 또 『경국대전』 「예전」 역과몽학조의 과시서에 『정관정요』라는 서명이 있고, 『통문관지(通文館志)』 권2 「과거(科擧)」 몽학팔책(蒙學八冊)조에도 이 책의 이름이 보여 이 시대 몽골어 교재였음을 알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정관정요』는 『원사(元史)』권24에 의하면, 1312년(원 인종 원년)에 원(元) 인종(仁宗)이 이 책을 열람하고 아림철목아(阿林鐵木兒)에게 몽골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원 문종(文宗)이 1332년(원 문종 복위4)에 규장각(奎章閣) 학사원(學士院)으로 하여금 파스파문자로 번역한 몽골어를 기술하게 하였다는 기사가 『원사』 권36에 전한다. 『원사』 권137 「열전」 제24에 의하면, 이때에 번역한 몽골어를 파스파문자로 기술한 것은 찰한(察罕)과 조원용(曹元用)이라고 하였다. 위구르문자로 쓰인 것과 파스파문자로 된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조선에 유입되어 몽골어 교재로 편찬되었는지는 원전이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위구르문자로 쓰인 것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몽골어 교재는 왜란과 호란 이전까지 사역원의 몽학에서 사용하다가 전란 이후에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첩해몽어(捷解蒙語)』 등 사역원에서 자체적으로 편찬한 몽골어 학습서와 바뀌었다.

서지 사항

원전이 전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구성/내용

『정관정요』는 원래 당(唐)의 오긍(吳兢)이 정관(貞觀)의 치(治)라 하여 중국 역사 상 가장 좋은 정치를 편 것으로 알려진 당(唐)나라 태종(太宗)이세민(李世民)의 치적을 모아서 10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조선전기에 역과(譯科)와 각종 취재(取才)에서 몽학, 즉 몽골어의 출제서로 사용되었다. 역관의 교재에 이처럼 정치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역관들을 단순한 통역보다는 통치의 관리로서 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정광, 『역학서 연구』, J&C, 2002.
  • 정광, 『조선시대의 외국어교육』, 김영사, 2014.
  • 한우근 외, 『역주 경국대전』(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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