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典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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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弘文館)에 소속되어 있던 종3품 관원.

개설

전한(典翰)은 조선시대 1466년(세조 12)에 예문관 직관(直館)을 전한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어, 1470년(성종 1) 예문관 개편 때 종3품 관직이 되었다. 경연을 담당하며 왕의 자문(諮問)에 응하고, 궁중의 경서(經書)와 사적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을 설치할 때는 보이지 않는다. 세조가 집현전을 폐지한 뒤 인재 양성을 이유로 다시 경연과 문한(文翰) 관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면서 예문관 관원을 전한으로 했다가, 1478년(성종 9)에 홍문관 관원으로 편제되었다.

담당 직무

홍문관 전한은 문한을 담당하며, 왕의 질문에 대비하는 직무를 띤다. 전한은 왕의 명령이나 글을 대신 짓는 역할과 더불어 고문(顧問)에 대비하는 경연관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즉, 전한의 역할은 자문, 교육, 문한이었다.

이 가운데 전한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경연관이었다. 그런데 법제적으로 전한이 경연에서 무엇을 담당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홍문관 관원은 전원 경연관을 겸임한다고 했지만, 『경국대전』 「이전」 ‘경연’조에는 전한 같은 종3품 관원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직제를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직제학과 같은 경연 시강관(侍講官)을 맡았을 것으로 보인다.

홍문관이 국가의 모든 편찬 사업을 주관하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관원인 전한도 성종대의 『동국통감』과 『동국여지승람』 등에 참여했고, 이런 역할은 조선후기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홍문관 부제학(副提學)부터 부수찬(副修撰)에 이르는 관원에게 지제교를 겸임하게 했으므로, 전한도 지제교의 직무를 띠었다.

전한은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 편찬에서도 중요한 관직이었다. 전한은 다른 홍문관 관원과 함께 춘추관 편수관을 겸직하면서 직접 기록을 작성하는 사관(史官)의 직무를 수행했다. 임사홍(任士洪)의 경우처럼 실록청(實錄廳)이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게 되면 실록청 편찬관으로 참여했다. 또 전한은 예문관 응교를 겸직할 수도 있었다. 즉, 전한은 왕의 명령이나 글을 대신 짓는 대제학과 제학의 직무를 보좌하는 기능도 띠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1466년에 예문관 직관을 전한으로 삼으면서 만들어졌다. 1470년 예문관 개편 때 예문관의 종3품 관직이 되었다가, 1478년에 홍문관 관원으로 편제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강독(講讀)과 고명(誥命)을 맡는 경연청(經筵廳)을 두었는데, 전한은 이때 시강(侍講)으로 바뀐 듯하다. 1907년(융희 1)에 홍문관을 폐지하면서 전한도 함께 없어졌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간행위원회 편,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상·하, 혜안, 2000.
  • 오항녕, 「조선초기 문한관서의 정비와 사관제도」, 『한국사학보』 7, 1999.
  • 유영옥, 「집현전의 운영과 사상적 경향: 성리학 이해를 중심으로」, 『부대사학』 18, 1994.
  • 정두희, 「집현전 학사 연구」, 『전북사학』 4, 1980.
  • 최승희, 「조선초기 언관에 관한 연구: 집현전의 언관화」, 『한국사론』 1, 1973.
  • 최인기, 「조선초기 문원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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