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傳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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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의지나 결정 사항을 승정원 또는 이행할 관서에 전달하는 절차 내지 행위.

개설

왕정 국가에서 왕은 의사 결정의 최고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국정 운영에서 크고 작은 사안의 최종 결정은 왕에게 달려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왕의 결정은 그것을 이행할 승정원이나 해당 관서로 전해졌고, 이것을 가리켜 전지(傳旨)라고 지칭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왕의 의지나 결정 사항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했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래하였고, 한국사에서도 고려 및 조선시대 관찬 사서를 통해 왕의 의지가 실행된 체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지는 바로 왕의 의지나 결정이 최초로 공식화되는 단계였다.

내용

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 운영 체제에서는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최종적으로 왕의 결정, 왕의 의사 표명이 있어야 했다. 행정적으로는 왕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보고가 올라간 뒤 왕이 그에 대해 재결(裁決)을 내린 경우도 있었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왕이 독자적으로 결심한 것에 대해 이행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 승정원에서 왕의 의사 결정 결과를 받들어 그것을 수행할 관서에 전달하였다. 이러한 절차 내지 행위를 전지라고 하였는데, 대개 문서로 전달되었다. 이렇게 전달된 왕명을 이행할 관서에서 반드시 전지 또는 왕의 교지를 받들어 시행한다는 근거를 명시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사용된 전지의 용례는 약 6,800여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전형적인 용례는 승정원의 승지, 도승지에게 명하여 특정 관서에 전지한 경우들이다(『태조실록』 2년 4월 19일), (『태조실록』 2년 5월 26일). 이렇게 전달된 전지에 대해서 그것을 수행할 관서에서는 ‘봉전지(捧傳旨)’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왕명을 이행하였다(『세조실록』 2년 6월 4일).

변천

전지는 문자대로 따지면 왕의 지(旨)를 전(傳)한다는 뜻이다. 고려말에는 왕명을 지칭할 때 선지(宣旨)와 왕지(王旨)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조선에 들어서는 왕지와 교지(敎旨)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런 왕명을 이행하는 제도와 절차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조선시대에 왕명을 출납하는 기관이 초기에는 중추원이었다가 뒤에 승정원으로 바뀌었고, 왕명도 사안에 따라 승정원을 통하지 않고 전해지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명경일, 「정조 대 傳敎軸을 통해 본 『承政院日記』의 문서 謄錄 체계」, 『고문서연구』 44 , 2014.
  • 이근호, 「조선시대 국왕의 備忘記 연구」, 『고문서연구』 44, 201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