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사(電報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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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에 전보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

개설

전보사는 1896년(건양 1) 농상공부 소속으로 설립되어 전보 관련 사무를 담당하였다. 본래 전보·전신 업무는 188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한동안 침체되어 있다가 갑오개혁 후 재개하였다. 서울의 전보사는 전보총사(電報總司)로 승격되어 다시 지사를 두었다. 전보사 설립과 함께 작성된 전보 규칙에는 전보의 종류, 전보 취급 시간 등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전보사는 1900년 통신원의 설립에 따라 통신원 소속으로 바뀌었다. 1905년 4월 각종 통신 업무가 일본에 위탁되면서 전보사의 역할도 사실상 끝나게 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전보사는 1896년 전보에 관한 모든 사무를 맡기 위해 농상공부 소속으로 설립된 기구이다. 전보·전신 업무는 1880년대 이미 개시되었다. 1888년(고종 25) 만들어진 「전보장정(電報章程)」을 보면 이미 만국전신규정(萬國電信規程)을 모방하여 전신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여러 규칙과 제도가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전보총국이 만들어지고, 「전보장정」이 제작되었으며, 국문 전보도 취급하였다. 갑오개혁 때 관제 개정을 거치면서 전신 업무는 농상공부통신국 체신과에서 담당하였고, 1896년 다시 전보사가 만들어졌다.

조직 및 역할

1896년 7월 23일 전보사 관제에 따르면 전보사는 농상공부 대신의 관할하에 소속되어 전보에 관계되는 모든 사무를 맡았다. 전보사의 등급은 1등과 2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계속 변화해 갔다. 1897년 6월 1등급에 속하는 서울의 전보사는 전보총사로 승격되었고, 1903년에는 마포지사, 도동지사(桃洞支司), 시흥지사(始興支司) 등이 문을 열었다. 직원으로는 사장(司長)과 주사(主事)를 두었는데 주임관인 사장은 매 사(司)에 1인을 두되 기술에 능한 사람으로 임명하였다. 판임관인 주사는 한성사(漢城司)에는 10인 이하, 각 항구에 주재하는 전보사에는 3인 이하, 각 지방의 전보사에는 2인으로 정하였다. 전보 규칙에 따르면 전보는 사용하는 곳에 따라 관보(官報)·국보(局報)·사보(私報) 세 종류가 있었다. 취급 형태에 따라 다시 요급(要急)·조교(照校)·통상(通常)·추미(追尾)·동문(同文)·수신(受信)·반신비예납(返信費豫納)·우체(郵遞)·별송(別送)의 9종으로 구분되었다.

변천

1900년 통신원이 독립 기구로 발족하면서 우체·전신·선박해원(船舶海員) 등에 관한 모든 사무를 관리하게 된다. 농상공부전보사 체제에서 통신원전보사 체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05년 4월 1일 통신 기관을 일본에 위탁한다는 내용의 한일통신기관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신 업무도 일제에 넘어갔다. 명목상 통신원이라는 기관명은 유지되지만 1906년 7월 27일 폐지되었다. 전보사는 1905년 7월 시점에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1906년 이후 전신 업무는 통감부통신관리국이 관장하였다.

참고문헌

  • 『국내전보규칙(國內電報規則)』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 「전보장정(電報章程)」
  • 서영희, 『대한제국 정치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체신부 편, 『(대한민국)전기통신사업사』, 체신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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