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裝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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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을 오래도록 보존하거나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표지를 염색하거나 튼튼하게 장정(裝幀)하는 것.

개설

장황(裝潢)의 어원을 살펴보면 장(裝)은 겉을 싸거나 의구(衣具)를 장식하는 것을 의미하고, 황(潢)은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종이를 누렇게 염색하는 것을 말한다. 『통아(通雅)』에서는 ‘바깥쪽에 테두리를 치면 안쪽이 연못이 된다.’라는 의미에서 장지(裝池)라고도 하였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장황장지변증설」에서 서첩(書帖)을 표구하는 것을 장황 또는 장지라고 하는데, 이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뿐 상태를 분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하였다. 그 밖에도 장황은 장황(粧䌙), 장황(裝䌙), 장책(粧冊), 장표(裝裱), 장배(裝背)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장황은 전적의 표지를 염색하거나 튼튼하게 장정하는 용어로 장황(粧䌙), 장황(裝䌙), 장책(粧冊)이라고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장황(粧䌙)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용어이자 의궤(儀軌)에서 정식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예를 들면, 1398년(태조 7)에 좌정승 조준, 대사헌(大司憲) 조박(趙璞) 등이 『사서절요(四書切要)』를 바칠 적에 정서(淨書)하고 장황하여 바쳤다는 기록(『태조실록』 7년 12월 17일)이 있다. 그 밖에 1440년(세조 22)에 내사본(內賜本)을 받은 자가 장황하지 않아서 책이 훼손되므로, 앞으로는 내사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장황하여 승정원에 바친 후에 선사기(宣賜記)를 받을 것을 법제화한 기록(『세종실록』 22년 8월 10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황(裝潢)은 1445년(세종 27)에 『치평요람(治平要覽)』 150권을 편찬했을 때에 선사(繕寫)하고 장황한 후에 완질로 만들어서 올리도록 한 기록(『세종실록』 27년 3월 30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황(裝䌙)은 1488년(성종 19)에 이칙(李則) 등이 옛사람의 말과 법을 써서 진헌하자 장황해서 올리라는 명을 내린 기록(『성종실록』 19년 11월 2일)을 들 수 있다.

장책(粧冊)은 서책을 장정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고, 장책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장책장(粧冊匠), 책장(冊匠)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중앙의 서적 출판을 담당했던 교서관에는 활자의 보관하는 업무를 맡은 수장제원(守藏諸員) 44인과 함께 장책을 전문으로 하는 장책제원(粧冊諸員) 20인의 잡직을 두었다.

참고문헌

  • 조계영, 「朝鮮王室 奉安 書冊의 裝䌙과 保存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 천혜봉, 「韓國典籍裝潢考」, 『大東文化硏究』25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