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長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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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현 남부, 서피저(西彼杵)반도·장기반도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지역.

개설

겸창(鎌倉)시대, 장기씨가 지두(地頭: 지역 총괄 책임)가 된 이후부터 장기로 불리었다. 1571년 포르투갈 선박이 입항한 이후 무역항 및 기독교 전도 지역이 되었다.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일본 전국을 통일한 직후 직할지가 되었고, 강호(江戸)시대에는 유일한 개항장으로서 번영하였다.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시가지의 북쪽 절반이 파괴되었다.

자연 환경

시가지의 주위가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중심 산봉우리로는 가장 높은 팔랑악(八郞岳)과 범장악(帆場岳) 외에 언산(언산)·봉화산(烽火山)·금비라산(金比羅山)·도좌산(稻佐山)·보현악(普賢岳)·암옥산(岩屋山) 등이 있는데, 300~400m에 불과하지만 평지가 적은 지형이고 언덕이 많다. 하천은 동쪽 지역은 팔랑천(八郞川)과 그 지류인 평목장천(平木場川)·정념천(正念川), 서쪽은 삼중천(三重川)·다이량천(多以良川), 남쪽은 록미천(鹿尾川)·약엽천(若葉川) 등이 흐르고 있다.

위치 비정

서북부는 서피저(西彼杵)반도 부근에 걸쳐 서피저군(西彼杵郡) 외해정(外海町)·금해정(琴海町)과 접하고, 북부는 시진정(時津町)·장여정(長与町)·다량견정(多良見町)과 접해 있다. 남부는 삼화정(三和町)·향소정(香燒町)과 접하고, 서부는 동지나해에 임해 있으며, 남서쪽의 만 입구에 장기항이 있고, 이곳으로 유입되는 중도천(中島川)·포상천(浦上川) 유역 등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관련 기록

조선시대에 일본에 표류한 조선인의 경우 장기와 대마도를 거쳐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1652년(효종 3) 일본 지기도(智奇島)에 표류하였던 통영 토병(土兵) 서일립(徐一立) 등 10여 명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들어갔다가 바람에 표류하여 지기도를 거쳐 장기에 정박하였다가 송환되었다. 이들이 조선에 돌아와 임진왜란 당시 잡혀가 장기에 사는 조선인과 일본의 사정에 대하여 알렸다는 기록이 있다(『효종실록』 3년 9월 19일). 1664년(현종 5)에도 흥양(興陽) 사람 19명이 바람을 만나 일본 은주(隱州)로 표류한 후 장기로 보내진 후 대마도를 거쳐 송환되었다(『현종개수실록』 5년 5월 12일).

참고문헌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國史大辭典編集委員会,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ー,『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