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현(長鬐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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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장기현(長鬐縣)은 신라의 지답현(只沓縣)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기립현(鬐立縣)으로 개칭되어 의창군(義昌郡: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의 영현(領縣)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장기현이라 하고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 경주(慶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고려중기 혹은 그 이후 어느 시기부터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장기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415년(태종 15)에 장기현의 지방관을 지현사(知縣事)로 삼고 4품 이상의 무신(武臣)으로 임명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장기현감(長鬐縣監)으로 조정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장기군(長鬐郡)이 되었으나, 1914년에 영일군(迎日郡)에 합병되어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 장기현은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장기현은 신라의 지답현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기립현으로 개명하고 9주(九州) 중 양주(良州)에 소속된 의창군의 영현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장기현이라 개명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감무가 파견되었는데, 처음 파견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중기 혹은 그 이후로 추정된다.

장기현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동해안에 위치한 관계로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고자 1415년(태종 15)에 장기현의 지방관은 지현사로 하고 4품 이상의 무신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지장기현사(知長鬐縣事)의 임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434년(세종 16)에 장기현감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세종실록』 16년 11월 19일) 지장기현사는 불과 몇 년 만에 장기현감으로 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직 및 역할

장기현은 신라시대에 의창군의 영현인 기립현으로 편성되었다. 기립현에는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장기현은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장기현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장기현에는 고려중기 혹은 그 이후에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장기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초기에 한때 지현사가 파견된 적도 있었으나,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감무의 후신인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장기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장기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장기에는 6품의 무관(武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18명, 지인(知印) 8명, 사령(使令) 7명, 관노(官奴) 12명, 관비(官婢) 12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세종 연간에 지장기현사가 장기현감으로 조정된 이후, 조선시대 내내 장기와 관련하여 연혁에서 특별한 변동은 없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장기군으로 변동되어 동래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장기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장기군은 폐지되고 그 영역은 영일군에 합병되었다. 조선시대에 장기현의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위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