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字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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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글자를 연구하는 잡학의 하나.

개설

자학(字學)은 글자의 유래(由來)·음(音)·훈(訓)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393년(태조 2)에 육학(六學)의 하나로 설치하였으며, 교서관(校書館)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에서도 개국과 함께 1393년(태조 2) 자학을 병학(兵學)·산학(算學)·율학(律學)·역학(譯學)·의학(醫學) 등 육학의 하나로 설치하여 양가(良家)의 자제들로 하여금 익히게 하였다(『태조실록』 2년 10월 27일). 그러다가 1406년(태종 6)에 좌정승하윤(河崙)의 건의를 따라 유학(儒學)과 함께 십학(十學)의 하나로 설치하였다(『태종실록』 6년 11월 15일). 제조관(提調官)을 두고 유학은 예문관·성균관·교서관 삼관(三館)의 현임(見任) 7품 이하만 시험하게 하고, 자학 등 나머지 9학은 현임 관리나 산관(散官)을 가리지 않고 4품 이하부터 음력 2월·5월·8월·11월 사중월(四仲月)에 시험 치르게 하여 성적에 따라 출척(黜陟)의 근거 자료로 삼았다. 사중월에 실시한 정기시험은 취재(取才)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이처럼 취재하는 법을 세워도 실제 효과가 없자 각 학에서 통(通)한 것의 다소를 요량하여 점수를 더하고, 점수가 같은 경우 근무한 일수의 다소를 겸용하여 등차(等差)를 정하여 후학을 권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2년 10월 17일).

1418년(세종 즉위년)에 예조에서 제조관이 고위직이어서 교육과 평가를 담당하기 부적합하다며, 제조를 보좌하는 참좌관(參佐官)으로 제거(提擧)와 별좌(別坐)를 두어 자학의 교육과 평가를 담당하게 하였다(『세종실록』 즉위년 12월 17일). 자학은 교서관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교서관은 십학 중 유학에 속하는 삼관 중 하나인 동시에 자학에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440년(세종 22)에 의정부의 요청에 따라 교서관의 자학을 권면하고 장려하기 위하여 문과 급제자 중에서 나이 젊고 글씨 잘 쓰는 자를 골라서 교서관에 배정하여 자학을 익히게 하였다(『세종실록』 22년 1월 10일).

1462년(세조 8)에 이조에서 교서관은 자학, 전의감(典醫監)은 의학, 서운관(書雲觀)은 음양학(陰陽學), 사역원(司譯院)은 역학, 승문원(承文院)은 이학(吏學), 병조(兵曹)는 무학(武學)으로 각기 업무를 맡아 보는 직무가 있는데 따로 제조(提調)·별좌·훈도(訓導)를 두는 것은 불편하다고 하여 제조와 별좌를 폐지하고 교육 업무를 해당 부서 당상관이 감독하도록 하였다(『세조실록』 8년 3월 21일). 한 관청 안에 교육 담당자를 별도로 배치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관청의 실무 책임자에게 교육 활동까지 겸하게 한 조치였다.

십학 체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자학과 이학이 빠지고 화학(畵學)과 도학(道學)을 신설하여, 유학·무학·역학·의학·음양학·산학·율학·화학·도학·악학으로 완성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중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9.
  • 이성무, 『한국 과거제도사』, 민음사, 1997.
  • 한우근 외, 『역주 경국대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 김대식, 「조선 초 십학 제도의 설치와 변천」, 『아시아교육연구』 12-3, 2011.
  • 이성무, 「조선초기의 기술관과 그 지위」, 『혜암유홍렬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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