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현(任實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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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임실군으로 하여 남원부에 소속시켰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임실현에 감무를 두었다. 1403년(태조 3)에 임실현이 관할해 오던 1현과 1소 1부곡을 폐지하여 임실현에 편입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임실현이 전라도 남원도(南原道)의 중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는 임실현이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남원진에 속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임실현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에는 940년에 임실군으로 낮추어서 남원부에 소속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임실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그것이 이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1409년(태조 9)에 도관찰사(都觀察使)윤향(尹向)이 건의하여,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전라도의 현과 향·소·부곡은 거의 모두 본 고을에 합쳐졌다. 그에 앞서 1403년에 임실현이 관할해 오던 1현과 1소 1부곡이 폐지되어 임실현의 직촌(直村)이 되었다. 1현은 구고현(九皐)이고, 1소는 양등량(楊等良)이며, 1부곡은 취인(醉仁)이다.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임실현에 종6품 현감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임실현감은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고 그 밑에 중앙 관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임실현은 현감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현감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변천

1455년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여러 고을을 중·좌·우익으로 나누어서 소속을 정하였다. 이때 임실을 전라도 남원도의 중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임실은 남원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조선후기에는 전주거진이 전라중영(全羅中營)으로 바뀌었다. 중영(中營)의 속읍은 전주·김제·고부·진안·임실·금구·만경·부안 8곳이며, 중영의 병수(兵數)는 마병(馬兵) 5초(哨), 속오(束伍) 46초, 표하군(標下軍) 454명, 당보군(塘報軍) 59명, 수솔군(隨率軍) 689명으로 되어 있다.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임실현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북도는 수부(首府)를 전주에 두었으며, 임실군을 비롯한 15개 군으로 편성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임실군지』, 임실군지편찬위원회, 1997.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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