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역(臨溪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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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보안도에 속한 역.

개설

조선시대에는 건국 직후부터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기존의 역로를 개편하였는데, 임계역(臨溪驛)은 그 과정에서 강릉도호부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대에는 강원도의 역도(驛道)인 대창도(大昌道)에 소속되었으며, 세조대에는 보안도(保安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강릉도호부 조에는 임계역이 우계(羽溪)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역제(驛制)가 기록된 『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우계 지역에 위치한 역명에 임계역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고려사』에서 우계와 명주 지역에 설치된 것으로 언급된 대창역(大昌驛)·진부역(珍富驛)·횡계역(橫溪驛)·대화역(大和驛)·방림역(芳林驛)·운교역(雲交驛)·목계역(木界驛)·고단역(高丹驛)·악풍역(樂豐驛) 등이 『세종실록』「지리지」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임계역의 설치 시기는 조선 건국 이후부터 세종대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조직 및 역할

1477년(성종 8)에는 호조의 건의에 따라 공수위전(公須位田) 20결이 지급되었다(『성종실록』 8년 1월 24일). 또한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강원도 강릉 조를 살펴보면, 당시 임계역에는 역리(驛吏) 20명, 역노(驛奴) 20명, 역비(驛婢) 20명과, 대마 1필, 복마 2필 등 3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숙식할 수 있는 관사(館舍)도 건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변천

1457년(세조 3)의 역승 폐지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면서 세조 연간에는 각 역도에 소속된 역의 수가 많고 역 사이의 거리가 멀어 제대로 순시하기가 어려운 까닭에 역로가 쇠퇴하는 폐단이 발생함에 따라, 1462년(세조 8)에 대대적으로 역로를 개편하였다. 그 과정에서 임계역은 보안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어 보안도 찰방(察訪)의 지휘를 받았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 뒤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도 변함없이 보안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보안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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