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대군(日本國大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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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년(인조 13) 대마도의 국서(國書) 위조 사건 이후 장군 칭호 대신 사용한 호칭.

개설

1617년(광해군 9), 1623년(광해군 15)에 일본 막부(幕府)가 조선에 보낸 국서(國書)에서 장군의 호칭을 ‘일본국왕’ ‘일본국주(國主)’ 등으로 대마도에서 위조한 사실이 드러나 1635년 관련자가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을 유천일건(柳川一件, 유천사건)이라 한다. 막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보내는 국서에는 ‘일본국 원모(源某)’로 쓰고, 조선에서 장군에게 보내는 국서에는 ‘일본국 대군’으로 바꾸어 쓰게 하였다.

변천

조선에서 일본에 보내는 국서에 대한 호칭을 1636년(인조 14)에 일본에서 요청하여 ‘대군(大君)’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1711년(숙종 37) 당시 제6대 장군이었던 덕천가선(德川家宣)의 정치 고문이자 유학자였던 신정백석(新井白石)은 조선에서 파견된 통신사가 지참한 국서와 장군의 답서에서 장군의 호칭을 ‘일본국왕’으로 지칭하게 하는 개혁을 단행하면서 1711년에는 ‘국왕(國王)’이라 개칭하였다. 그 후 8대 장군 덕천길종(德川吉宗)이 ‘일본국왕’ 칭호를 비롯한 신정백석의 외교개혁을 폐지하고 전례로 돌아가면서 1719년(숙종 45)에 다시 ‘대군’으로 개칭되었다. 1747년(영조 23) 영조는 대신(大臣)과 비변사 당상관을 인견하였을 때 통신사행의 국서에 ‘일본국 대군 전하(日本國大君殿下)’라고 쓰고, 아래에는 ‘조선 국왕 근봉(朝鮮國王謹封)’이라 쓰도록 지시하였다(『영조실록』 23년 11월 18일).

참고문헌

  • 『임하필기(林下筆記)』
  • 민덕기, 「日本史上의 ‘國王’ 稱號-일본 중·근세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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