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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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과에 속하는 배나무의 열매.

개설

장미과의 인과류(仁果類)로 4월에 개화하고, 9~10월에 열매를 수확한다. 열매는 공모양으로 연갈색의 껍질 안에 흰색의 과육이 있다. 과육은 수분이 많고 달고 시원한 맛이 있다. 주로 생과일로 먹고, 음료나 음식의 부재료로 이용된다. 제례(祭禮)에 반드시 이용되는 과일이며, 조선에서 7월에 종묘에 천신(薦新)하는 물품이었다.

내용 및 특징

당나라 때의 기록인 『신당서(新唐書)』에 발해에서 나는 배를 비롯한 과실이 소개되어 있고, 『고려사(高麗史)』「식화지(食貨志)」에는 배나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배를 식용한 지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함길도 등 35개의 군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 전라도가 13곳으로 가장 많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경기도, 황해도, 함길도 등이 배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경도 안변(安邊)의 석왕사(釋王寺) 배[梨]는 태조가 잠저(潛邸) 때 친히 심은 것으로 진상(進上)하는 규례가 있었는데, 배나무의 햇수가 오래되어 말라 죽었다(『영조실록』 9년 4월 16일).

천신이나 진상 그리고 사신 접대 등에 소요되는 각종 과물(菓物)들의 공급은 상림원(上林園)에서 관장하였는데, 1465년(세조 11)에는 다른 관서에서 취급하던 과실들도 모두 상림원에서 관장하도록 했다. 또한 배 등의 과수(果樹)를 직접 재배하여 관리했다(『세조실록』 11년 12월 19일). 상림원은 1466년(세조 12)에 장원서(掌苑署)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안(貢案)의 기록에 의하면 진상하는 배가 15,000개인데, 10,000개는 각 고을에서 진봉(進封)하는 것이고, 5,000개는 장원서 과원(果園)에 열린 것을 진봉하도록 되어 있다(『중종실록』 24년 7월 26일). 하지만 기후의 변화로 배 농사에 지장이 있는 해에는 공물을 면제 또는 경감하였다(『성종실록』 2년 윤9월 23일).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에는 이시랑(李侍郞)의 시에 대한 화답시에 둥글지 않은 금리(金梨)라는 배의 종류가 나온다. “두어 촌이나 기름한 누른 배[金梨脩數寸] / 꼭 둥글어야 좋은 건 아닐세[脩不要其團]”라는 구절로 보아 둥근 배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허균(許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爵)』에는 5가지 종류의 배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하늘 배[天賜梨]는 “성화(成化) 연간에 강릉에 사는 진사(進士) 김영(金瑛)의 집에 갑자기 배나무 한 그루가 돋아났는데 열매가 사발만 하였다. 지금은 많이 퍼졌는데, 맛이 달고 연하다.”고 하였다. 둘째, 금색배[金色梨]는 정선군(旌善郡)에 많다고 하였다. 셋째, 검은배[玄梨]는 “평안도의 산 고을에 있다. 검푸른 색인데, 물이 많고 꿀맛이다.”라고 하였다. 넷째는 붉은배[紅梨]로 “석왕사에서 나는데, 붉고 크며 맛이 산뜻하다.”고 하였다. 다섯째, 대숙배[大熟梨]는 “속칭 부리(腐梨)라고 한다. 산중에 많은데, 곡산(谷山)과 이천(伊川)의 것이 매우 크고 맛도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허균 자신이 직접 먹고 본 것을 기억하며 생산되는 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으므로 조선에서 생산되는 배의 종류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중국과의 교류에서도 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명나라에 갔던 사람들이 약재뿐만 아니라 용안(龍眼)·여지(荔枝)·감자(柑子) 등과 함께 배를 가지고 들여오려는 자들도 있었다(『연산군일기』 2년 9월 10일). 인조 때에는 청나라의 교역품으로 배[生梨]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그 양이 한 번에 10,000~30,000개 정도였다(『인조실록』 17년 11월 15일)(『인조실록』 17년 11월 19일). 이 배는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준비하였다(『인조실록』 23년 9월 14일).

조선에서는 배를 향설고, 배숙, 이강주 등을 만드는 데 이용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기록된 향설고(香雪膏)를 만드는 법은 “시고 단단한 문배의 껍질을 벗기고 꿀물을 달게 타서 퉁노구에 붓고 문배에 통후추를 많이 박아 생강을 얇게 저며 넣어 숯불의 뭉근한 불로 끓여라. 빛이 붉고 속속들이 꿀이 들어 씨까지 윤이 나면 쓰되 배가 시어야 빛이 붉고 곱다. 신맛이 적으면 오미자 국을 약간 치면 좋다. 마른 정과에 곁들이려면 국물을 조려 깐깐한 기운이 있게 하고, 수정과를 하려면 살짝 조려 국물을 넉넉히 하고, 계피가루를 약간 타고 잣을 흩어 써라.”고 하였다. 배숙은 “좋은 배를 깨끗이 네 조각 내어 속은 버리고 물을 붓고 삶다가 꿀을 넣어 푹 삶아 퍼서 식혀 실백을 흩어 써라.”고 하였다.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에 기록된 향설고는 “질이 좋은 배를 네 조각이나 다섯 조각으로 대소대로 잘라서 황청을 끓이고 배를 넣어 뭉근한 불로 물러질 만큼 끓여라. 빛이 붉고 즙이 끈끈하고 윤이 나면 써라.” 하였고, 배숙은 “배숙을 하려면 둥글게 가로로 자르면 숙수의 상과 같다. 쪽으로 속을 긁어내고 후추를 통째로 박아서 쓰지만 끓으면 다시 다 빠지니 배를 한소끔 끓여서 건져 내라. 후추를 6~7개씩 박고 생강을 얇게 저며서 통계피 한 조각을 넣어라. 국물을 넉넉하게 하고 꿀을 달게 타서 뭉근한 불로 졸이면 국물과 배가 붉고 맛이 좋다. 문배로 하면 통으로 하고, 국물을 맑게 하고 신맛이 나라고 오미자를 넣지만 좋지 않다. 쓸 때는 백자를 띄우고 생강을 조금 위에 얹고 계피는 맛이 다 우러난 후에 꺼내 써라.”고 하였다.

두 책에서 기록된 내용이 서로 상반된다. 즉 『규합총서』의 향설고 만드는 법은 『윤씨음식법』의 배숙을 만드는 법과 같고, 『규합총서』의 배숙 만드는 법은 『윤씨음식법』의 향설고 만드는 법과 같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기록된 이강고(梨薑膏)는 껍질이 얇고 즙이 많으며, 거위의 깃털 색처럼 흰 배로 향과 맛이 진한 아리(鵝梨)라는 배를 이용한다. 아리는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낸다. 간 배는 고운 명주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린다. 생강도 즙을 내어 밭친다. 배즙, 좋은 꿀, 생강즙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을 한다고 하였다.

봄철에 아름답게 피는 하얀 배꽃에 대한 글도 많이 전해진다. 이화주(梨花酒)는 배꽃이 필 때 빚는 술이다. 『산림경제(山林經濟)』의 기록에 의하면, 이화주 빚는 법은 정월에 쌀누룩을 만들어 두었다가 배꽃이 피면 쌀로 구멍떡을 만들어 누룩가루와 섞어 독에 넣고 며칠에 한 번씩 손쳐 뒤적인다. 봄에는 7일, 여름에는 세 이레면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배는 맛은 달고 약간 시며,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많이 먹으면 마르고 피곤을 쉬 느끼며, 쇠붙이의 상처로 생기는 금창(金瘡)이 생긴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사람은 많이 먹어야 한다. 폐를 윤택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담을 삭이고 화를 내려주며 창독과 주독을 풀어 준다고 하였다. 배는 특히 기관지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래와 기침을 없애고 목이 쉬었을 때 좋다. 그 밖에도 감기·해소·천식에 효능이 있고, 해독 작용이 있어 숙취 해소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는 다른 과일에 비해 저장성이 좋아 비교적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며, 단백질 분해효소가 있어 육류 요리에 이용하면 고기를 연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산림경제』「구급(救急)방」에는 상한(傷寒)의 초증(初症)에는 배의 생즙이 효력이 있다고 하였다.

변천

한국의 배는 종류가 다양하다. 과거에는 지금의 배보다 작고 간간한 질감의 돌배가 많았다. 지금의 배는 일제강점기에 새로운 품종인 장십랑, 만삼길, 신고 등이 보급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배는 둥근 형태에 연갈색이지만, 중국이나 서양의 배는 비파 모양으로 위는 가늘고 아래는 불록한 형태로 색은 연노랑에서 연두색으로 다양하다.

참고문헌

  • 『계산기정(薊山紀程)』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도문대작(屠門大嚼)』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목은집(牧隱集)』
  • 『사가집(四佳集)』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한수재집(寒水齋集)』
  • 이성우, 『고려이전한국식생활사연구』, 향문사,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