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직(李王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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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대한제국 황실을 천황가의 왕공족으로 소속시키며 그 관리와 운영을 전담하기 위해 설치한 부서.

개설

이왕직(李王職)은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22일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순종을 중심으로 하는 황실 구성원과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이왕직은 일본궁내성과 조선총독부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고종과 순종 등의 왕족부터 궁(宮)·묘(廟)·능(陵)·원(園)·묘(墓)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인물과 재산을 관리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병합하면서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은 이태왕(李太王), 순종은 이왕(李王)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궁내성에서 관리하는 왕족이 되었다. 일본 정부가 대한제국 황실의 정치적 기능과 국가로서의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조선왕실이라는 지위만 유지하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왕실의 상징인 종묘와 궁·능·원·묘는 유지되었으며, 기존의 의례적 행사도 계속 진행하였는데, 이와 같은 조선왕실의 관리와 운영을 위해 이왕직을 설립한 것이다.

조직 및 역할

1910년 12월 30일에 일본 정부는 이왕직 관제 14조를 공포하였다. 그 내용은 이왕직의 직제 구분 및 인원 배정에 관한 것이었다. 제1조에 ‘이왕직은 궁내대신의 관리에 속하여 왕족 및 공족(公族)의 가무(家務)를 관장한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왕직이 일본궁내성의 지시를 받으면서 고종부터 의친왕까지 대한제국기 황족 전부를 관리하는 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왕직의 직제와 인원은 지속적으로 개편되었다. 황실령 제39호로 이왕직의 사무와 직원을 조선총독이 감독하였다. 또 황실령 제40호로 이왕직 경비는 은급유족부조료(恩給遺族扶助料)와 퇴직관리 사금(賜金)을 제외하고 이왕 곧 순종의 세비(歲費)에서 지출하며, 세비의 수지는 조선총독이 감독하고, 그 예산 및 결산은 조선총독의 심사를 거친 뒤에 궁내대신이 인가해서 다시 통첩하는 것으로 하였다. 따라서 이왕직이 일본 황실이나 정부와 관련한 일을 시행 혹은 운영할 때는 조선총독부에 보고하고, 다시 조선총독부에서 그것을 궁내성에 보고한 뒤 그 답신을 통첩받은 뒤에 시행하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11년 2월 1일부터 시행된 궁내성령 제16호에는 이왕직 직원인 판임관의 정원과 이왕직 속(屬) 90인, 전사보 25인, 전의보 7인, 기수 9인이 지정되었다. 궁내성령 제17호에는 고종이 거처하던 덕수궁 곧 이태왕부(李太王附)에 이왕직 속 20인과 전의보 2인이 배속되었고, 영친왕 곧 왕세자부에게는 이왕직 속 2인과 전의보 1인이 소속되었으며, 이강공 등의 공족에게는 이왕직 속 각 5인을 분속시키도록 하였다. 동시에 발표된 궁내성령 제18호는 이왕직에 판임 대우의 참봉 75인을 두며 능침의 관리와 수호 및 제사에 종사하도록 했다.

이왕직 직원은 1911년 2월 1일 자로 임명되었다. 초대 이왕직 장관에는 자작 민병석(閔丙奭), 이왕직 차관에는 고미야 사보마쓰[小宮三保松], 사무관에는 고희경(高羲敬)·이회구(李會九)·이항구(李恒九) 등이 임명되었다. 2월 1일 공표되어 바로 시행된 이왕직 사무 분장 규정은 모두 9개 조항이다. 9개 조항은 이왕직의 주요 조직인 5개 계의 임무 분장으로 이왕직의 실무를 보여 준다. 9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조:서무계, 회계계, 장시계(掌侍係), 장사계(掌祀係), 장원계(掌苑係)를 둠

제2조:서무계는 증답(贈答)과 보첩(譜牒), 사장(詞章), 고인(古印), 부책류(簿冊類)의 보관, 관인(官印) 및 직인(職印)의 보관, 궁궐 규칙 및 기타 중요한 공문서의 기초 및 심사, 공문 서류의 접수, 발송, 편찬, 보관 및 통계 보고, 도서의 보관, 출납 및 열람, 직원의 진퇴와 신분 등을 관장

제3조:회계계는 출납 및 용도, 재산, 영선(營繕), 궁제(宮第)와 정원 및 창덕궁 내 청사와 그 부속물 관리 등을 관장

제4조:장시계는 순종의 신변, 의식이나 빈객 접대 및 마차 사용, 순종의 건강과 위생, 창덕궁 궁인과 공선(供繕) 및 향연 등을 관장

제5조:장사계는 제사, 묘전궁(廟殿宮) 및 분영(墳塋)의 관리, 아악(雅樂) 등을 관장

제6조:장원계는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등을 관장

제7조:이태왕부는 고종의 신변 및 건강과 위생, 덕수궁의 서무 회계, 석조전과 돈덕전을 제외한 궁제 및 청사와 그 부속물의 관수 등을 관장

제8조:왕세자부 직원은 영친왕의 신변 및 건강과 위생, 서무 회계 등을 관장

제9조:공족부(公族附)는 각 공족 집안의 서무 회계를 관장(『순종실록부록』 4년 2월 1일)

변천

1911년에 정착된 이왕직 관제는 1915년에 본직직원사무분장규정(本職職員事務分掌規程)이 개정되면서 임무와 활동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규정은 11조로 기존의 5계였던 이왕직 기구를 1사(司) 6과(課)로 개편하여 사무를 분장한 것이다. 11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장시사, 서무과, 회계과, 주전과(主殿課), 제사과, 농사과, 장원과 등을 둠

제2조:장시사는 순종의 신변 및 건강과 위생, 궁인, 음식 및 향연, 의식, 빈객 접대, 왕가의 보첩과 사장(詞章) 및 고인(古印) 등의 관리 등을 관장

제3조:서무과는 직원의 진퇴와 신분, 장관과 차관의 관인 및 직인의 관리, 궁규(宮規)와 중요한 공문서의 기초 및 심사, 공문 서류의 접수, 발송, 편찬, 보관 및 통계 보고, 도서의 보관과 출납, 반납, 열람, 증답 등을 관장

제4조:회계과는 출납 및 용도, 재산, 미술 공장 및 구사(廐舍), 공가(公家)의 회계 감독 등을 관장

제5조:주전과는 궁제 및 이왕직 청사의 관리 등을 관장

제6조:제사과는 제사, 묘전궁릉원묘의 관리 등을 관장

제7조:농사과는 임업, 농장, 종마목장, 유우장(乳牛場) 등을 관장

제8조:장원과는 박물관, 동물원, 정원 및 식물원 등을 관장

제9조:이태왕부 직원은 고종의 신변과 건강 및 위생, 공선과 향연, 궁인, 서무, 청사 관리 등을 관장

제10조:왕세자부 직원은 영친왕의 신변과 건강 및 위생, 서무 등을 관장

제11조:공족부 직원은 공가의 서무 및 회계를 관장(『순종실록부록』 8년 3월 24일)

위의 11개 조를 1911년 규정과 비교하면, 5계 체제에서 장시계가 1사로 승급되고 서무계와 회계계·장원계가 과 체제로 바뀌었으며, 주전과·제사과·농사과의 3과가 추가되어 1사 6과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왕직 관제가 1사 6과가 되었다는 것은 11조의 내용에서도 나타나지만, 왕족 생활을 위한 시위만이 아니라 궁궐의 관리에서 공문서의 접수와 발송, 왕실의 제사와 원림의 운영에 관한 일이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이왕직 관제는 1915년에 개편된 이후 이듬해에도 지속되었다. 1916년에 개편된 이왕직 관제의 주요 내용은 1사 6과 체제가 1사 7과로 바뀌면서 의식과가 추가되었다. 의식과는 장시사에서 담당하던 빈객 접대와 향연 등을 관장하였다. 장시사의 업무가 증가하여 의식과를 새로 만들어 11개 조항의 관제가 12개로 늘어났다(『순종실록부록』 9년 6월 10일).

1919년에 고종, 1926년에 순종이 사망하면서 두 왕을 모시던 궁인들과 이왕직 직원, 건물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에 이왕직에서 고종과 순종의 상장례 관련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1910년대에 이왕직 관제가 증대되고 변화한 것은 1910년 병합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관리하기 위해 창설된 이왕직이 안정화되던 과정으로 볼 수 있다(『순종실록부록』 16년 3월 26일).

이왕직은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의 군정(軍政)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일본 정부가 예산 변용을 이유로 일본 황실의 여러 제도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실의 존재 이유가 되었던 왕공족 제도를 폐지하자 이왕직은 그 기능을 다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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