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사기(二十四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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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무과 시험의 과목으로 구한말 구식 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조선의 관군들이 익혔던 군사 무예.

개설

고려시대 군인의 무예는, 무예별감(武藝別監) 설치 뒤 군병들을 훈련시키면서 가르친 살수(殺手)·사수(射手)에 속한 몇 종류가 있었고, 조선초기까지도 대체로 이 정도였다. 조선중기에 임진왜란을 치른 뒤, 백병전 상황에서의 군사들의 단병무예를 강화하기 위해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이 전수한 무예육기(武藝六技)와, 명의 척계광(戚繼光)이 왜병방비법(倭兵防備法)으로 저술한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참고하여, 무예 12반(般)을 훈련도감에서 군병들에게 훈련시켰다. 영조대에 장창(長槍) 등의 기예(技藝)를 세분하여 18반으로 늘렸으며, 정조대는 6가지 기예를 더하여 24종의 무예로 정비, 무예 24반이 되었다.

그 종류는 장창(長槍)·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기창(騎槍)·당파(鐺鈀)·낭선(狼筅)·예도(銳刀)·쌍수도(雙手刀)·왜검(倭劍)·교전(交戰)·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쌍검(雙劍)·마상쌍검(馬上雙劍)·월도(月刀)·마상월도(馬上月刀)·협도(挾刀)·등패(藤牌)·권법(拳法)·편곤(鞭棍)·마상편곤(馬上鞭棍)·곤봉(棍棒)·마상곤봉(馬上棍棒)·격구(擊毬)·마상재(馬上才) 등이다. 조선중기 이후 무관을 시험 보아 뽑을 때는, 이 무예 중 몇 가지를 골라 시험 과목으로 하였다.

내용 및 특징

무예 24기는 정조대에 완성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실린 스물네 가지 기예를 말하며, 구한말 구식 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조선의 관군들이 익혔던 군사 무예이다.

장창은 긴 창을 말하며, 전보와 후보로 이루어져 있는 장창의 자세는 대적, 기만, 방어, 공격세로 구성되어 있다. 날카롭고 빠른 왜구를 제압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임진왜란 중 남병 참장낙상지가 왜군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을 공격할 때에 주로 사용한 무기이며, 이후 총·포가 개발된 시기에도 여전히 실전성을 갖고 있어 그 유용함이 증명되었다.

죽장창은 자루가 길므로 자세는 아주 단순하다. 대나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긴 창으로 주로 적의 기병을 막는 데 쓰였다. 그리하여 상당수의 자세는 적과 적의 말을 위협하는 자세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처럼 상대의 기병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곧장 창을 세워 적의 예봉을 꺾는다. 특히 찌른 후에 창을 뽑으며 급히 물러나는 백원타도세(白猿扡刀勢)가 중요한 특징이다.

기창(旗槍)은 단창이라고도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는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이다. 진법(陣法) 운용 시 각 대오의 위치와 정렬 그리고 이동 시에 기창수가 진의 이동을 담당하였다. 특히, 창에 달린 깃발을 이용하여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 야간 기습공격 시 효용성이 높았다. 퇴산색해는 적의 기병을 공격하는 자세로 창의 특징을 포함한 기예이다.

기창(騎槍)은 말을 타고 창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며, 조선초기부터 무과 시험의 주요한 과목이었다. 주요한 기법은 말 위에서 전후좌우로 창을 휘둘러 적을 찌르는 기법이다. 전체적으로 기병(騎兵)무예 즉, 마상무예는 조선 건국 초기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의 오랑캐들을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연마되었던 기예이다. 특히, 조선초기에는 갑을창(甲乙槍)이라 하여,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교전하는 방식이, 그리고 삼갑창(三甲槍)이라 하여, 세 사람 혹은 세 대오가 둥근 원을 그리며 서로 겨루는 방식의 실제 전투방식과 흡사한 무예를 연습하였다.

삼지창으로 더 많이 알려진 당파는 창을 막기에 좋은 무기이며, 명의 척계광이 왜구의 장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고안한 대표적인 무기이다. 가운데 창에 작은 포를 달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기룡, 나창, 가창과 같은 자세는 평지에서 창을 든 상대와 대적하는 자세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병을 제압하는 기법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병 말의 눈을 찌르고, 말의 발굽을 찌르는 기법이 수록되어 있다.

낭선은 긴 대나무에 가지를 세우고 사이에 철심을 붙여 적의 접근을 막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한 무기이다. 그리고 철심 부분에 독을 묻혀 직접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의 공격법 또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낭선은 척계광이 개발한 원앙진이라는 진법에서 그 위용을 드높였는데, 등패와 한 짝을 이뤄 상대를 근접하지 못하게 하여 등패의 공격을 도왔다.

예도는 중국에서 조선세법이라고 불렀을 만큼 조선의 독특한 칼 쓰는 법이 수록된 검법이다. 전체 28개의 자세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선참사세와 양각적천세와 같은 담력을 키우는 자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조선 검법의 핵심이며 가장 기본적인 칼 쓰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격법(擊法), 자법(刺法), 세법(洗法), 격법(格法) 등 자세한 법이 나온다.

쌍수도(雙手刀)는 중국에서는 장도(長刀)라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무예제보』까지는 장도라 불렀다. 그 이름처럼 길고 큰 칼을 쓰는 법으로 왜구의 검에 대적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특히, 칼이 길어 칼의 중심을 잡아주는 동호인이 상당히 크게 발달하였다. 독특한 자세로는 향좌방적, 향우방적, 향상방적으로 이어지는 방어를 바탕으로 한 공격일 것이다. 이 검보는 특히 왜검을 대적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어서 그 기법에 왜검의 요소가 상당히 많이 내포되어 있다.

왜검은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타법(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아주 빠르고 강렬한 검법으로 앞을 향하여 쭉쭉 질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산속의 소나기라는 뜻의 산시우(山時雨), 버드나무 가지를 가리키는 유사(柳紗), 떨어지는 별똥별이라는 뜻의 유성출(流星出) 등 시적인 표현이 쓰인 독특한 검법이다.

교전은 조선의 검선 김체건이 왜검을 응용하여 격검하도록 만든 것이며, 무예 24기 중 가장 늦게 완성된 검법이다. 압(壓)과 접(接)을 적절히 응용하여 상대의 검을 제압하고, 연속적인 공격과 방어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당시는 목검에 가죽을 입힌 피검(皮劍)을 무기로 사용하여 교전을 하였다.

제독검은 이여송의 ‘제독’ 계급이 검보의 명칭에 붙은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 완성된 검법이다. 총 14세로 되어 있으며 향좌격적과 향우격적이 좌우로 빠르게 회전하며 검선을 살려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적진에 고립되었을 때 회전하며 퇴로를 뚫는 것이 핵심이다.

본국검(本國劍)은 신라의 화랑 황창이 창안한 검보이다. 조선의 금군 기록인 『금위영등록』에 본국검을 수련하였다고 나오므로 아마도 조선전기에도 수련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총 24세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후좌우 자유롭게 공격과 방어가 이뤄져 정갈한 맛이 나는 검법보이기도 하다.

쌍검은 두 개의 검을 들고 구사하는 검법으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져 좁은 공간에서 그 위력이 배가된다. 오화전신세와 장검수광처럼 두 개의 검이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매력적인 검법이다.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기생들이 긴 쌍검을 사용하여 검무를 추는 것 또한 살펴볼 만한 일이다.

마상쌍검(馬上雙劍: 한자 중복 삭제)은 말 위에서 검 두 개를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며, 특히 항우도강세, 손책정강동세, 환고환패상세, 운장도패수세처럼 중국의 무장인 항우, 손책, 유방, 관우의 이름이 자세에 사용되었다. 특히, 마상쌍검은 정면에 말 머리가 있으므로, 몸을 좌우로 많이 비틀어 양옆의 적을 신속히 베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월도(月刀: 한자 중복 삭제)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 사용한 청룡언월도와 유사하며, 동선이 크고 위력이 있어 참마도(斬馬刀)라 불릴 정도로 파괴적인 검법보이다. 특히 왜검을 제압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맹호장조세와 용광사우두세 같은 회전법과 연결된 자세가 특징이다. 오관참장세의 경우 『삼국지』의 관우가 조조의 군영을 빠져나오며 다섯 관문의 장수를 베는 기법의 고사가 전한다.

마상월도는 말 위에서 월도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조선의 기병들이 필수적으로 익혔던 기예이다. 특히 월도의 무게와 길이 문제로 월도, 중월도, 청룡도 등으로 다양하게 무기를 변형하여 익혔다.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중 유일하게 수염을 기른 장수의 모습이 있는데, 실제 작업에 참여했던, 장용영초관백동수의 초상이 아닐까 한다.

협도는 눈썹 모양이어서 미첨도라 불린다. 영조대까지 협도곤으로 불리다가 정조대에 협도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적의 진을 부수는 데 효과적이어서 파도(破刀)라 불렸다. 무예 24기 가운데 가장 무거운 병기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월도에 비해 쓰임새가 더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등패는 등나무로 만든 방패와 요도, 표창을 사용하는 무예이다. 남만(현 베트남)의 등나무를 이용하여 방패를 만들었다가 조선초기에는 나무판에 쇠가죽을 붙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기병은 둥근 방패, 보병은 긴 사각 방패를 사용하였고 조총과 화살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조선초기부터 원패와 제비꼬리 모양의 연미패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연미패는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권법은 맨손으로 익히는 무예로 검을 배우기 전에 익혔다. 백병전에서 무기 없이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현각허이세와 요란주, 순란주, 복호세 등 중국 권법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권법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주요한 특징이 발보다는 주로 손을 사용하는 수박의 형태가 남아 있는 듯하다. 문헌을 보면 태조장권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고도 한다.

곤봉은 한자로는 곤봉이나 곤방으로 읽는다. 무기술의 기초 과정으로 익혀야 했으며, 특히 음양수(陰陽手)를 익히는 기본이 되는 무기술이다. 대적세, 대전세, 대조세 그리고 하천세, 도두세, 제미살세 등 서로 상대의 곤을 부딪치며 익히는 것이 주요하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봉은 연봉, 그리고 일본은 강봉을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연봉과 강봉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는 강봉을 사용하였다.

편곤은 쇠도리깨를 연상시키는 무기술로 연속 공격이 쉽고, 강한 타격력을 바탕으로 기병들의 주요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특히 상대의 병기를 감아서 공격하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난감한 무기이다. 성을 공격할 때 굽어지는 속성으로 인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마상편곤(馬上鞭棍)은 말 위에서 편곤을 사용하는 법으로 자루를 약간 짧게 하여 기병들이 항시 착용하였던 기본 무기였다. 보통 때는 편추(鞭芻)라 하여 짚으로 만든 인형을 세워두고 말을 타고 달리다가 편곤으로 내려치는 연습을 하였다.

격구(擊球)는 서양의 폴로(polo)와 비슷하며, 고려의 귀족들이 즐겨 하였고, 여인들 또한 그 기술을 익혀 널리 말을 활용한 기마민족의 전통을 경기로써 이어지게 한 기예이다. 그러나 1725년 이후로는 무과의 실기시험에서 제외되어 이후 점점 사라진 기예이다. 조선초기에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격방(擊棒)이라는 놀이가 모든 계층에서 행해졌는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평민들까지 즐겨 행했다. 여기서 격구는 말 위가 아닌, 평지에서 걸으며 하는 일종의 골프 같은 놀이였다.

마상재는 말 위에서 일종의 재주를 부리는 기예로, 정조대에는 조선의 모든 기병이 반드시 익혀야 했다. 특히 일본의 통신사로 가서 시연을 보였던 기병들은 일본열도를 뒤흔들 정도로 칭송을 받았다. 마상무예를 연마하는 말들은 대체적으로 다리가 짧으며 몸이 튼튼한 호마였다.

변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인들은 조총을 이용한 보병전술로 조선군을 무력화하고 예리한 왜검으로 돌진하여 조선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단병무예를 강화하기 위해 전쟁 중인 1594년(선조 27)에 장창(長槍)·당파(鏜鈀)·낭선(狼筅)·쌍수도(雙手刀)·등패(藤牌)·곤봉(棍棒) 등 무예 6기를 도입하였고, 이후 1749년(영조 25)에 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예도(銳刀)·왜검(倭劍)·교전(交戰)·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쌍검(雙劍)·월도(月刀)·협도(挾刀)·권법(拳法)·편곤(鞭棍) 등 12기를 합하여 무예 18기를 정립하였다. 나아가 1790년(정조 14)에는 기존의 무예 18기에 마상월도(馬上月刀)·마상편곤(馬上鞭棍)·마상곤봉(馬上棍棒)·격구(擊毬)·마상재(馬上才)·마상쌍검(馬上雙劍) 등 6기를 추가하여 무예 24반을 완성하고, 그 내용을『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실었다.

의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우리 무예의 발굴은 물론 주변국의 무예를 적극 받아들여 만든 무예 24기는 정조가 『무예도보통지』에서 밝혔듯이 평화로운 때에 어려운 일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 자주국방의 상무정신의 결정체로서 그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연병지남(練兵指南)』
  • 국사편찬위원회 편,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경인문화사, 2008.
  • 임동규, 『한국의 전통무예 : 24반 무예를 중심으로』, 학민사, 1990.
  • 김산, 「무예도보통지 長兵武藝 복원의 실제와 비판」,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김산·김주화, 「무예도보통지의 勢에 대한 연구」, 『체육사학회지』l-13, 2004.
  • 이근채, 「무예도보통지의 편찬과정과 무예사적 가치」, 한국체육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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