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규(李身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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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93년(정조 17) ~1868년(고종 5) = 76세]. 조선 후기 헌종(憲宗)~고종(高宗) 때의 천주교도로,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마티아. 본관은 평창(平昌)이며, 거주지는 인천이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李承薰)이고, 어머니 나주 정씨(羅州丁氏)는 정재원(丁載遠)의 딸이자 정약용(丁若鏞)의 누이동생이다. 할아버지는 참판(參判)이동욱(李東郁)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을 지낸 이광직(李光溭)이다.

헌종~고종 시대 활동

문재(文才)와 의술(醫術)에 뛰어났다고 알려진 이신규(李身逵)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아버지 이승훈이 사망하자 인천으로 이주하여 천주교를 믿었다. 1839년(헌종 5)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체포되었으나 배교를 약속하고 풀려났으며, 이후 이기원(李基元)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다시 현석문(玄錫文) 등과 함께 다니며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다가, 1846년(헌종 12) 5월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다시 한 번 체포되었으나 이때도 결국 배교하고 석방되었다.[『일성록(日省錄)』헌종 12년 5월 30일],[『일성록』헌종 12년 윤5월 8일],[『일성록』헌종 12년 8월 1일]

이신규는 철종(哲宗) 때 순정왕후(純元王后)의 병환을 고친 공을 인정받아 능참봉에 제수되기도 하였다.[『치명일기(致命日記)』] 그러나 1866년(고종 3)부터 시작된 병인박해로 1868년(고종 5) 4월 인천에서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고 모반부도죄(謀叛不道罪)의 죄목으로 윤4월 6일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종실록(高宗實錄)』 5년 윤4월 2일),(『고종실록』 5년 윤4월 6일),[『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5년 윤4월 6일] 그리고 다음날인 윤4월 7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76세였다.[『승정원일기』 고종 5년 윤4월 7일]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치명일기』
  • 이기경, 『벽위편(闢衛編)』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하,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구가톨릭대사전』9,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