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옥(李巒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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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귀화한 여진인으로 올적합의 침입을 조선에 알린 인물.

개설

이만옥은 조선에 귀화한 여진인으로 1491년(성종 22) 1월 12일에 경흥의 조산보(造山堡)를 침입한 세력이 도골(都骨)·사거(沙車)·니마거 등 3종족의 올적합(兀狄哈)임을 고려에 알리고, 전쟁에 참여하기를 원하였다.

활동 사항

1491년(성종 22) 1월 12일에 올적합 여진인 1,000여 명이 조산보(造山堡)를 포위하고 성까지 넘어 들어와 군사 3명을 쏘아 죽이고 또 만호(萬戶) 및 군사 26명에 부상을 입혔으며, 성안의 남녀 모두 7명과 말 5필, 소 11두를 노략질하여 갔다. 또한 경흥부사(慶興府使)나사종(羅嗣宗)은 두만강을 건너 쫓아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성종실록』 22년 1월 19일).

하지만 조선에서는 조산에 침입하였던 적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니마차(尼麻車)나, 칠성 올적합(七姓兀狄哈) 또는 구성 올적합(九姓兀狄哈)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성종실록』 22년 3월 4일). 그런데 조산보에 침입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이가 이만옥이었다.

이만옥은 6월에 도골·사거·니마거 등 3종족의 올적합이 경흥(慶興)에 침입하였다는 사실을 조선에 제보한 것이다. 그가 이들의 소행임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사촌 형 도롱오(都弄吾)를 통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올적합을 정벌하는 데 따라가고 공을 세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의 보고를 받은 좌부승지(左副承旨)권경희(權景禧)에 의하면, 그의 외모로 판단되는 나이는 28∼29세 정도였다고 한다. 보고를 받은 성종은 이만옥에게 갑옷과 투구 그리고 활과 화살을 하사하여 북방 정벌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였다(『성종실록』 22년 6월 7일). 이후 조선의 기록에는 그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박정민, 「조선시대 여진인 내조(來朝) 연구」,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 이규철, 「조선초기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가톨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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