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림(李琳)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1427년(세종 9)~1445년(세종 27) = 19세]. 조선 전기 세종 때 활동했던 왕자. 세종의 적출 8남 2녀 중에서 제 7왕자. 봉작(封爵)은 평원대군(平原大君)이다. 자는 진지(珍之)이고 호는 근행당(謹行堂)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는 청송 심씨(靑松沈氏)로서 영의정(領議政) 심온(沈溫)의 딸이다. 친형은 문종(文宗), 세조(世祖), 안평대군(安平大君)이용(李瑢), 임영대군(臨瀛大君)이구(李璆), 광평대군(廣平大君)이여(李璵), 금성대군(錦城大君)이유(李瑜)이고, 친동생은 영응대군(永膺大君)이염(李琰)이고, 친누이는 정소공주(貞昭公主)정의공주(貞懿公主)다.

평원대군의 죽음과 부모의 슬픔

1434년(세종 16) 1월 나이 8세 때에 평원대군에 봉해졌는데, 이해 4월 호군(護軍)홍이용(洪利用)의 딸과 혼인하였다. 1437년(세종 19) 나이 11세 때에 평원대군이 되었고, 종학(宗學)에 입학하였다. 점차 배움에 힘써 경서(經書)를 깊이 연구하고, 『시전(詩傳)』과 『예기(禮記)』와 『대학연의(大學衍義)』에 통달하였다. 또 글을 잘 짓고 글씨가 신비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도 그 실력이 빼어났다. 1445년(세종 27) 1월 16일 피부병[痘瘡]에 걸려서 향년 19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그 전해 1444년(세종 26) 12월 광평대군을 잃은 데 이어 이듬해 1445년 1월 평원대군을 잃었으므로 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매우 컸다. 소헌왕후는 그 충격으로 쓰러져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2년 뒤에 1446년(세종 28) 두 아들의 뒤를 따라서 52세에 세상을 떠났고, 세종도 4년 뒤에 1450년(세종 32) 아들과 부인의 뒤를 따라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실록』의 「평원대군 이림 졸기」에서 평원대군이림의 성품과 자질을 보면, “기개가 크고 풍도(風度)가 호걸스러웠다. 모습이 준수하여 범상하지 아니하였으며, 성품이 악한 것을 미워하였고 남의 착한 것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였다. 평소에는 엄하고 꿋꿋하며, 침착하고 묵중하여, 함부로 말을 하거나 잘 웃지 아니하였다. 사람을 접대하고 사물을 다룰 적에는 겸손하고 공순하며, 온화하고 우아하여, 존귀하고 권세가 있다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천성의 지극한 천성에서 우러나왔다. 천후(天候)를 점치기를 잘하여, 바람·비·구름·천둥들의 변화를 미리 말하는 것이 거의 다 틀림이 없었다.” 하였다.[『세종실록』세종 27년 1월 16일]

묘소와 제향

시호는 정덕(靖德), 정헌(定憲)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곡리에 있다. 부인 강녕부부인(江寧府夫人)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호군홍이용의 딸인데, 자녀가 없었으므로, 예종(睿宗)의 둘째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이현(李琄)을 후사로 삼았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