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파(伊路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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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 사역원의 왜학에서 사용한 일본어 가나문자 교재.

개설

『이로파(伊路波)』는 1430년(세종 12) 상정소(詳定所)에서 제학(諸學)의 취재에 출제서를 정하여 보고한 계문(啓文)(『세종실록』 12년 3월 18일)의 왜훈(倭訓), 즉 일본어 취재의 출제로 정한 교재 가운데 하나로 들어 있었다. 또 『경국대전』「예전(禮典)」 ‘역과초시 왜학’의 과시서에도 맨 처음에 보인다. 『통문관지(通文館志)』권2에 「과거(科擧)」 왜학팔책(倭學八冊)조에도 초창기에 사용한 왜학서로 『이로파』를 비롯한 14종의 교재가 나열되어 있어 조선전기에 사역원에서 사용하던 일본어 학습서임을 알 수 있다. 일본 가가와(香川)대학 도서관에 원전으로 보이는 1491년(명 효종 4)판 『이로파』 한 권이 소장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가나문자 하나하나에 정음(正音)으로 발음을 달아 이 문자를 배울 때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로파』는 일본의 가나문자 명칭인 ‘Iroha’를 한자로 적은 것이었다. 오늘날의 일본어 문자는 ‘고쥬온(五十音)’이라 하여 50개의 문자를 인정하지만 당시에는 47개의 가나문자를 ‘いろは’라고 부르고 한자로 ‘伊路波, 伊呂波’로 적었다. 오늘날 일본에 전해지는 조선사역원 간행의 『이로파』를 보면 일본어의 가나문자를 학습하던 교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사역원에서 사용한 외국어 학습 교재들은 언어의 변천에 따라 여러 차례 교체되었다. 이것을 정리하면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초기에 해당하는 초창기(草創期)의 외국어 교재는 『세종실록』과 『경국대전』에 서명이 게재되었으며 해당국의 동몽(童蒙) 교과서를 수입하여 사용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이 교재들이 실제 그들과의 대화에서 유용하지 못함을 깨닫고 이를 대폭 수정하였다. 전란 이후에 새로 편찬된 교재를 중기 역학서로 보는데, 이 시대는 교재가 자리를 잡는 정착기(定着期)였다. 그리고 후기의 교재는 영·정조시대에 앞 시대의 교재를 신석(新釋)·개수(改修)·보완(補完)하였는데, 이 시기를 개정증보기(改訂增補期)로 보았다.

초창기의 일본어 교재들인 ‘이로파·소식(消息)·정훈왕래(庭訓往來)’ 등의 서명이 『세종실록』과 『경국대전』에 등장하였다. 이 교재들은 모두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에 테라코야(寺子屋) 등의 사립학교에서 사용한 훈몽(訓蒙) 교과서였다. 이로부터 초창기 사역원의 외국어 교재들이 대부분 해당국의 어린이용 교재를 수입하여 편찬하고 이를 언어 교육의 교재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나문자 교재인 『이로파』는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어 교재로 새롭게 등장한 『첩해신어(捷解新語)』의 ‘이려파(伊呂波)’와 ‘고쥬온즈(五十音圖)’에 자리를 양보하였다.

서지 사항

『이로파』의 크기는 가로 20.7×세로 30.1㎝이고 첫 장 반엽(半葉)의 광곽(匡郭)은 가로 16.4×세로 24.7㎝이며, 둘째 장 이하의 광곽은 이보다 조금 작아서 가로 16.4×세로 21.3㎝이었다. 활자본으로, 유계(有界)에 매 반엽이 6행으로 되었고, 사주단변(四周單邊)에 상하 내향태선흑어미(內向太線黑魚尾)를 가지고 있으며, 판심(版心)에는 서명이 없고 엽수만 기록되어 있었다.

전권은 전후(前後) 2부로 나누어 엽수를 표시하였다. 즉, 권수서명이 『伊路波(四體字母各四十七字)』인 전부(前部)는 1에서 4까지의 엽수 표시가 되어 있고, 후부(後部)의 ‘伊路波(合用言語格)’은 18엽이 최종엽이어서 모두 22엽의 전·후부를 합철(合綴)한 것으로 보인다. 5침(針)으로 편철된 한장본(韓裝本)의 겉표지에는 아무런 제목도 없고, 표지 서명이 있어야 할 곳은 흰 종이를 덧붙여 놓았다. 뒤표지에도 아무런 표시가 없고 ‘神原文庫 829.1’이라는 가가와대학 도서관의 도서 분류 표지만 붙어 있을 뿐 겉표지와 같은 두터운 한지(韓紙)로 되어 있었다. 겉표지를 넘기면 표지 뒷면에 네모난 붉은색 장서인[香川大學附屬圖書館]과 그 밑에 타원형의 푸른색 잉크로 찍힌 수서인, 즉 ‘香川大學圖書館, 昭 43.3.31,231154’이 있었다. 그러나 서문이나 발문 등 그 이상의 기록이 없어 이 책의 편자나 편찬 과정은 알 수 없었다.

구성/내용

일본의 가나문자 학습서로 역과(譯科)와 각종 취재(取才)에서 왜학, 즉 일본어의 출제서로 사용되었다. 일본 다카마쓰[高松]시에 있는 가가와대학의 도서관에 소장된 『이로파』는 1492년(명 효종 5)의 간기가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이 책은 일본에서 들여온 가나문자 학습서, 예를 들면 『이로하자진(いろは字盡)』 등을 저본으로 하여 사역원 자체에서 재편하고 가나문자 하나하나의 발음을 정음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1930년대 일본의 법관으로 고서 수집가였던 가메하라[神原甚造] 씨가 고니시[小西]라는 성(姓)을 가진 의사로부터 이 자료를 구입하였다고 하면서 혹시 임진왜란 때에 왜군의 선봉에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일본으로 반출하여 후손에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였다.

이 책은 전후(前後) 2부로 되어 있는데, 판심에 엽수 표시가 전부와 후부에서 각기 달라서 아마도 두 권의 책을 합철(合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부는 모두 4엽, 후부는 22엽으로 장차(張次)가 표시되었다. 전부는 ‘伊路波 四體字母 各四十七字’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가나문자 47개의 4가지 자체를 보여 주고 히라가나에 해당하는 첫 번째 자체에 정음으로 발음을 표기하였다. 후부는 2개의 소로체[候体] 서간문을 실었는데 아마도 가나문자를 읽고 익히기 위한 것이며 이를 『서격(書格)』이라는 별도의 왜학서로 보기도 하였다. 권미에, 즉 후부 18엽의 뒷면 첫 행에 ‘弘治五年 秋八月日’이란 간기가 있어 이 책은 1492년(명 효종 5) 8월에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정광, 『사역원 왜학 연구』, 태학사, 1988.
  • 정광, 『역학서 연구』, J&C, 2002.
  • 小倉進平, 『朝鮮語學史』, 東京: 刀江書院, 1940.
  • 神原甚造, 「弘治五年 活字版朝鮮本<伊路波>い就いて」, 『典籍之硏究』 第三號,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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