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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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송(南宋) 때 주희(朱熹)가 지은 의례서(儀禮書).

개설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는 중국 송나라 때 주희(朱熹, 1130~1200)가 지은 의례서(儀禮書)이다.

남송(南宋) 때 편찬된 이 책의 권13과 권14는 음악이론과 관련됐다. 권13에 율관과 조(調)에 대한 설명이 있고, 권14에서는 율려기보법(律呂記譜法)을 다루었다. 『의례경전통해』 소재 ‘풍아십이시보(風雅十二詩譜)’가 『세종실록』 권137에 전한다. ‘풍아십이시보’ 중 궁조(宮調)에 속하는 소아(小雅)의 ‘어려(魚麗)’ㆍ‘남산유대(南山有臺)’ㆍ‘녹명"(鹿鳴)’ㆍ‘황황자화"(皇皇者華)’, 이상 네 편의 선율이 세종 때 ‘회례아악곡(會禮雅樂曲)’의 선율로 차용됐다. 이 책은 세종(1418~1450) 당시 아악부흥(雅樂復興) 때 채원정(蔡元定)의 『율려신서(律呂新書)』와 함께 중요한 참고문헌의 하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주공(周公)이 지었다는 『의례(儀禮)』에 주희(朱熹)가 제설을 모으고,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원래의 서명은 『의례집전집주(儀禮集傳集注)』였으나, 주희가 만년에 수정을 가한 후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라 하였다. 주희(朱熹)의 예(禮)에 관한 저술에는 이 책 외에도 『가례(家禮)』·『고금가제례(古今家祭禮)』 등이 있다. 이 책은 중국에서 1196년(송 경원 2) 전후에 완성되었고, 조선에서는 1569년(선조 2)에 간행되었다.

서지 사항

66권 3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3.7cm, 가로 22.2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수(卷首)에 있는 「걸수삼례차자(乞修三禮箚子)」에서 주희는 ‘왕안석(王安石)이 과거의 과목에서 『의례(儀禮)』를 폐지하고, 『예기(禮記)』만을 남긴 상황을 비판하고‚ 『의례(儀禮)』를 예의 경(經)으로 간주하고, 『예기(禮記)』 및 여러 경전과 사서(史書)에 있는 예에 관한 내용들을 뽑아서 본경(本經) 아래에 덧붙이고, 주소(注疏)를 실었으며‚ 종률(鍾律)의 제도에 관한 것은 사우(士友)들에게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고 밝혔다.

주희의 『소학』과 『가례』가 조선시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으며, 그동안 학계에서도 이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의례경전통해』는 『가례(家禮)』, 『향례(鄕禮)』, 『학례(學禮)』, 『방국례(邦國禮)』, 『왕조례(王朝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편목으로 구성되었고, 그 내용은 장소와 상황에 따른 여러 예식들을 『의례(義禮)』, 『예기(禮記)』, 『주례(周禮)』 등의 예서를 편집하여 만든 것이다. 편차방식은 『의례』의 방식을 따랐는데, 이 중 『학례(學禮)』는 『의례』에 없는 편목으로 주희가 새로이 추가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학제, 교육의 이념, 교육방법, 교육내용 등이 수록된 ‘학교교육의 총체적인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제시하는 절차가 ‘소학-대학-실천’이라는 주희 공부론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는 ‘몸의 사회화-자율적 주체로의 성장-자율적 주체의 실천’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책 권수(卷首)에는 ‘의례경전목록(儀禮經傳目錄)’‚ 권1에는‘사관례(士冠禮)’‚ ‘관의(冠義)’, 2책 권2에는 ‘사혼례(士昏禮)’‚ ‘혼의(昏義)’, 3책 권3에는 ‘내측(內則)’‚ 권4에는 ‘내치(內治)’‚ 4책 권5에는 ‘오종(五宗)’‚ ‘친속(親屬)’이 있는데‚ 이상이 ‘가례(家禮)’이다. 권6에는 ‘사상견례(士相見禮)’‚ ‘상상견례(士相見義)’‚ ‘토아(投壺)’‚ 5책 권7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음주의(鄕飮酒義)’‚ 6책 권8에는 ‘향사례(鄕射禮)’‚ ‘향사의(鄕射義)’가 있는데‚ 이상이 ‘향례(鄕禮)’이다. 7책 권9에는 ‘학제(學制)’‚ ‘학의(學義)’‚ 권10에는 ‘제자직(弟子職)’‚ ‘소의(少儀)’‚ 8책 권11에는 ‘곡례(曲禮)’‚ 권12에는 ‘신례(臣禮)’‚ 9책권 13에는‘종률(鍾律)’‚‘종률의(鍾律義)’‚ 권14에는 ‘시악(詩樂))’‚ ‘예악(禮樂)’‚ 권15에는 ‘서수(書數)’ 궐(闕)‚ 권16에는 ‘학기(學記)’‚ ‘대학(大學)’‚ 10책 권17에는 ‘중용(中庸))’, 권 18에는 ‘보전(保傅)’‚ ‘천조(踐阼)’‚ 11책 권19에는 ‘오학(五學)’이 있는데‚ 이상이 ‘학례(學禮)’다. 권20에는 ‘연례(燕禮)’‚ ‘연의(燕義)’‚ 12책 권21에는‘대사례(大射禮)’‚ ‘대사의(大射義)’‚ 13책 22권에는 ‘빙례(聘禮)’‚‘빙의(聘義)’‚ 14책 권23에는 ‘공경대부례(公卿大夫禮)’‚ ‘공경대부의(公卿大夫義)’‚ ‘제후상조례(諸侯相朝禮)’‚‘제후상조위(諸侯相朝義)’가 있는데‚ 이상이 ‘방국례(邦國禮)’이다. 15책 권24에는 ‘근례(覲禮)’‚ ‘조사의(朝事義)’‚ 권25에는 ‘역수(曆數)’‚ ‘보무(卜筮)’ 궐(闕)‚ 16책 권27에는 ‘하소정(夏小正)’‚ ‘월령(月令)’‚ 17책 권28에는 ‘악제(樂制)’‚ ‘악기(樂記)’‚ 권29에는 ‘왕제지갑 분토(王制之甲 分土)’‚ 18책 권30에는 ‘왕제지지 제국(王制之乙 制國)’‚ 권31에는 ‘왕제지병 왕례(王制之丙 王禮)’‚ 권32에는 ‘왕제지정 왕사(王制之丁 王事)’‚ 19책 권33에는 ‘왕제지술 설관(王制之戊 設官)’‚ 권34에는 ‘왕제지기 건후(王制之己 建侯)’‚ 권35에는 ‘왕제지경 명기상(王制之庚 名器上)’‚ 권36에는 ‘왕제지신 명기하(王制之辛 名器下)’‚ 20책 권37에는 ‘왕제지임 사전(王制之壬 師田)’‚ 권21에는 ‘왕제지계 형벽(王制之癸 刑辟)’이 있는데‚ 이상이 ‘왕제례(王朝禮)’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일상의 실천을 위한 지침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 『의례경전통해』는 고전에 나타난 자료를 집대성하고 실용적인 예를 만들기 위한 참고자료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주희는 『주례(周禮)』를 ‘예경(禮經)'으로 인식했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의례儀禮』를 예(禮)의 본령으로 삼았다. 또한 사대부의 예에 한정된 현전의 의례를 과감히 개편해 가례에서 향례로, 다시 방국례(邦國禮)와 왕조례(王朝禮)로 나아가는 상향적 경세(經世)의 이념을 담았다. 이러한 구성은 그가 전 생애에 걸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기획의 산물이었다.

주희는 20대 지방관 시절부터 민간예속의 교정을 위해, 간소화된 예서의 보급을 추진했으며, 가족의례의 재정립을 위해 『가례(家禮)』를 편찬했다. 나아가 신유학 교육의 이념을 밝힌 『소학(小學)』을 재구성했다. 주희는 의례 중심으로 예학을 재편해 보편적인 도덕훈련의 방법을 밝혀, 궁극적으로 자율적인 도덕실천의 공동체를 구성하려 했다. 그 운동의 중심엔 자발적인 사대부 계층의 참여가 전제되어 있다. 이는 주희가 체계적인 교화의 프로그램을 통해 도덕적 개인의 배출함으로써, 아래로부터 탄탄하게 도덕의 공동체를 결성해 ‘평천하(平天下)’를 이루고자 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 노숙영, 「『의례경전통해』 「학례」를 중심으로 본 주자의 교육」, 『교육학연구』 제40권 제4호, 한국교육학회, 2002.
  • 박미라, 「『의례경전통해』의 체제에 나타난 주자의 예학사상」, 『종교와문화』 3호,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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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재윤, 「가족, 의례, 선정」, 『국학연구』 제16집, 한국국학진흥원, 2010.
  • 정경희, 「주자예학의 변화와 《의례경전통해》」, 『진단학보』 86호, 진단학회, 1998.